brunch

올해부터는 행복할 예정입니다.

by 은둘

지난해 한동안 난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몸도 많이 아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살면서 가장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고 체력과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의욕이 사라지며 모든 일이 귀찮아졌다.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한숨이 잦아졌다. 더불어 같이 있는 남편의 한숨도 깊어졌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남편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물했다.


누구에게는 가볍게 넘어갔을 일들도 내게는 거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가슴에 내려앉는 일이 많았다.

마음이 무거워지니 다시 몸이 아파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체력이 떨어지니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이 버겁게 느껴졌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었다. 세상이 무서웠고 변화가 두려웠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고만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난 그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기분에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들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오래된 말을 실감한 한 해였다.


다행히 지난 연말 즈음부터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 덕분이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연말에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난 선언하듯 떠들었다.

"난 내년엔 정말 행복해질 예정이야! 또 건강해질 거고!"

진심이었다. 그렇게 말을 뱉고 나니 한결 몸도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몸은 사실 생각보다 단순해서 내가 말하는 대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오랫동안 지속된 목 통증으로 집 가까이 있는 척추전문 병원을 찾았다. 최소한 목디스크일 거라는 진단을 나 스스로 내린 후였다. 나의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여기 뒤쪽으로 자라난 뼈들 보이시죠? 퇴행이 되며 뼈가 자라난 것들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난 얼빠진 얼굴로 엑스레이를 들여다보았다. 의사가 가리키는 곳엔 정말 뼈들이 뒤로 자란 듯 보였다.

"이 나이에도 퇴행이 오나요?"

"물론입니다. 당장 치료에 들어가시죠."

그 말을 듣고 나니 목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왔다.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앉아있는 내게 남편은 다시 큰 병원에 가보기를 권했고 얼마 후 난 대학병원에 앉아서 결과를 기다렸다.

"선생님! 제 뼈가 퇴행으로 자랐다고 하던데요."

"뼈가 자라요? 어디요?"

의사는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저기 뒤로 삐죽이 나온 저 뼈들이요."

난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어느 병원에서 진료받았습니까?"

"저희 동네 병원이요."

의사는 씩 웃더니 책상 한 구석에 있던 목뼈 모형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보이시죠? 이게 정상적인 목뼈입니다."

의사가 가리키는 뼈 모형은 엑스레이에서 본 내 목뼈와 똑같았다.

"이게 정상이라고요?"

"네! 환자분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정 불편하면 물리치료를 좀 받으시고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난 하마터면 의사의 손을 잡고 흔들 뻔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후 거짓말처럼 목 통증이 사라졌다. 그 후로 난 신기할 만큼 목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전에 느꼈던 통증도 어쩌면 나 스스로 목디스크일 거라고 진단해버린 탓에 점점 크게 통증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올해는 난 행복하다고 계속해서 내 몸에게 알려줄 생각이다. 순진한 내 몸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게다. 벌써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기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