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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보는 다양한 시선들

전세사기, 지옥을 버티기로 했다-11

by 교진 Mar 14. 2025

전세사기 피해자를 보는 시선들은 의외로 다양하다.


감사하게도 '어쩌다 그런 일을 당했냐'라는 안타까움이 대부분이었지만 때때로 피해자의 무지(無知)를 탓하는 '그러게 거기 왜 들어갔냐'는 식의 발언도 있었다.


전세사기가 터진 초반 가장 두려웠던 것 중 하나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였다. 1억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주일 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부모님이 놀라실텐데, 우시는 건 아니겠지... 머릿 속만 복잡해지는 것 같아 결국 담백하게 말씀드리기로 했다. 대신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말씀을 드렸다.


생각 외로 가족들은 담담했다. 그러나 속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속앓이하는 성격들이라 그 나만큼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인들의 반응도 가족과 대체로 비슷했다. 담담하거나 위로하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거나. 대체로 전세사기를 처음 접해보는터라 당혹스러운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상처가 됐던 것은 '탓하는 식', '아는 척'의 발언이었다.


가끔 어떤 이들은 "그러길래 잘 알아보고 들어갔어야지"라고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말의 속뜻은 물론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세히 되짚어보면 망할 전세사기가 일어난 건 온전히 피해자때문이라는 뉘앙스다.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억이 오가는 전세계약을 하는데 피해자가 모든 것을 다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이러한 피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주위의 안타까움을 곡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듣기엔 굉장히 불편한 말이다.


전세사기는 그 수법이 다양하게 진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등기부등본을 허위로 기재해 일명 '바지임대인'을 쓰는 사기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부동산과 짜고 임차인을 속여먹는 방법도 있다.


게다가 물렁한 법과 구태한 법원이 뒷받침해주니 속이려면 쉬운게 전세사기다.


이런 전후사정에 대한 이해없이 '탓하는 식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다. 거기 왜 들어갔냐니. 전세집에 들어가는 이유는 집에 살기 위함 아닌가. 당연한걸 왜 묻지?


적어도  피해를 지인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어떤 공감, 위로를 기대하지 않았다. 속에만 두면 병이 같아 밖으로 꺼내 것이었다.


극단적인 비유일수도 있겠으나 마포대교에서 뛰어나리기 전 마지막으로 생명의 전화를 건 것다.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망할 지옥을 견딜 힘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누가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모르니 무식하게 모든 사람에게 것 뿐이다. 그것이 민폐였다면 할말이 없긴 하다.


두 번째로 상처받는 건 '아는 척'이다.


전세사기가 터지자 바로 임차권등기를 신청했고, 소송을 진행했으며, 책잡히지 않을 적절한 말들을 골라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독촉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런데 가끔 자칭 전문가들이 "그건 이렇게 하면 돼", "이렇게 하면 받을 수 있어", "이건 이렇게 했어야지"라고 첨언할 때가 있다.


그런 말들은 공해라고 생각한다. 이미 다 해놨는데 뭘 더하란 말인가. 걱정하는 마음을 알기에 거진 흘려듣지만 너무 심할 때면 힘이 빠진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2만8000명을 넘다. 희귀한 범죄라기엔 수법이 다양해졌고 피해액은 천문학적이다.


난 내가 2만8000명 중 하나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에 휘말렸을까라는 생각에 현실자각 안되는 편이다.


또 허탈다. 1년간 이어졌던 소송 법원의 무한한 자비심 탓에 '일부승소'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강제성 없는 민사의 한계라지만 누가 봐도 뚜렷한 사안을 이딴 식으로 판단했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


아마 다른 피해자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복잡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건 '말을 한다'가 아니라 곪 속이 터져나오는 일종의 구조 신호다. 그럴 때는 그저 공감만 해주면 된다. 다른 말 필요없이 함께 욕해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듣기만 해달라.


그거면 피해자들은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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