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지옥을 버티기로 했다-2
전세사기를 당한 후 난 고장났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서 내리지 못했고, 타야 할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고 1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렸다.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화가 났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임대인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당시엔 문자로 주로 대화를 했기 때문에 어설픈 욕을 해 그에게 시답잖은 구실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때는 이자나 추가 비용을 본인이 내겠다는 임대인의 태도에 '양심은 있군'이라는 식으로 가스라이팅 당했던 것 같았다. 본인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면 그때부터 임대인을 믿지 말길 바란다.
나에겐 그 뒤로 후유증이 남았다. 계속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중요한 통화라면 녹음을 켜두는 습관이 생겼다. 또 외출할 때 문 단속을 과하게 하기 시작했다. 불이 꺼진 것을 봤음에도, 가스밸브를 잠궜음에도 세네번 다시 봐야 직성이 풀렸다.
꼬리를 문 생각이 망상으로 변했고 피해의식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술? 물처럼 마셨다.
2023년 12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잘못된 생각을 할수도 있겠다 싶었다. 창 밖 베란다를 뛰어 넘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도 생겼다. 힘들지만 나의 삶을 찾아야했다. 무너져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임대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집 권리 찾기 - 임차권등기 신청
우선 전세사기를 당했으니, 집에 대한 권리를 유지해야했다. 그래서 임차권등기명령을 알아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에게 대항력,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피해자가 직접 신청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사정을 안 부동산 사장님이 아는 법무사를 소개시켜줬다. 사장님은 현재 집을 소개해 준 사람이다. 사장님에게는 주위 빌라의 시세라던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대신 난 갈 때마다 박카스 한 박스로 보답했다.
민사소송 제기
또 임대인이 나의 전세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법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소송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변호사인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소송비용이었다. 아무리 친구라도 깎아주진 않을터. 어쩔 수 없이 통장을 깨기 시작했다. 퇴직금도 쏟아붓기로 했다.
대출상환, 신용하락 대응하기
법말고도 은행과의 문제도 있었다. 1억이 넘는 전세금 중 대출만 8000만원 정도였다. 상환이 안됐으니, 당연히 지연이자는 불어날 것이다. 신용점수도 떨어질 것이다. 이 문제도 풀어야 했다. 은행과의 상담이 필요했다.
자책·자기연민은 쥐약일 뿐
마지막으로 내 멘탈을 잡아야 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자책하고 반성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 임대인이다. 매일 이러한 말들을 되뇌이기 시작했다. 또 현 상황을 가족, 친구, 직장에게 알렸다. 도움을 기대한게 아니라 그래야 속이 뚫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들은 내 상황을 듣자 위로, 충고, 조언, 간섭했다.
그들의 말이 솔직히 듣기 거북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그것이라도 필요했다. 혼자 있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외부 미팅 자리에서도 억지로 이 이야기를 끌어냈다. 물론 사담을 할때만.
또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상황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바라보려고 했다. 이미 벌어진 일,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