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rene Feb 27. 2024

[남성과 여성의 페르소나] 이 여인에게 어떤 말을 해야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 가깝고도 먼 사이  © https://eddinscounseling.com





훤칠한 키, 지적인 외모, 좀처럼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한 성격의 남자. 

첫눈에 봐도 미모가 돋보이고 지성미가 넘치는 아리따운 여인. 

이 두 남녀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은 표현이 진부하긴 하나 선남선녀의 전형이다.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침묵이 흐른다. 이들의 다른 점 또 하나, 남자는 명문대 출신이고 여인은 실업계고등학교 졸업이다. 


훗 날, 여인은 남자와의 대화를 위해 수어(Sign language)를 배운다. 그리고 천사 같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가치 하나가 있다. ‘충분히 젊고 아름다운 나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으나 조금 다른 이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부모와 가정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다. 

빼어난 미모와 영민함이 있으나 소망과는 달리 대학을 포기하고 실업고를 졸업해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쉽지만 큰 불만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며 그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있다.  반면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과 외모를 지녔으나 지원을 받지 못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이 몹시 억울하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이 여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배우자를 위해 헌신하고 두 아이를 기르는데 온 정성을 다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합리화한다. 살림을 하면서 특별히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여인은 고운 맵시와 더불어 음식솜씨도 뛰어나고 손재주가 남달라 못하는 것이 없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찬사는 이 여인의 삶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이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이 쌓이기 시작한다. 여인은 아이들을 최고로  교육시켜 자신의 자랑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남자는 기본교육에 충실한 완고한 자녀교육관의 소유자다.


세상의 소리와 단절된 채 일생을 살아온 남자는 자기 아내를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경제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여인은 가정생활에 필요한 모든 경비지출을 사전승인과 함께 허락받고 보고를 해야 한다.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당연히 여인이 원하는 아이들의 사교육(음악, 미술, 스키, 운동…) 비용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비밀이 싹트기 시작한 이유다. 두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여인은 자신의 음식솜씨와 손재간을 필요로 하는 가정을 방문해 살림전반을 대신해 주는 ‘주부’이외의 일로 아이들 교육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연이  된 한 가정의 이야기를 여인이 내게 들려준다.


지역에서 탄탄한 기반의 사업체를 경영하는 이 집의 안주인은 오랜 세월 중병을 앓고 있어 모든 살림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한다. 환자까지 돌봐야 하는 살림을 오래 맡아 줄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여인의 솜씨에 온 가족이 만족해하고 안주인과는 자매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다.


남편이 출근한 후 여인은 이 가정으로 출근해서 남편 퇴근 시간 전에 자신의 집으로 퇴근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그 집 가족들은 여인이 미리 차려 놓은 저녁식탁에 앉아 솜씨 좋은 음식을 나누며 행복해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느 날 여인은 그 집 가장으로부터 자동차를 선물로 받는다. 출퇴근에 불편하지 않게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 신속한 기동력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는 이 여인의 남편과 한 건물 안에서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업무 관련으로 가끔 내 방에 들러 차를 마시는 일이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 자랑이 그칠 줄 모른다. 요즘은 아내의 친구가 새 차를 구입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를 주는 바람에 아내가 출퇴근을 시켜주니 무척 편하다고 자랑을 한다. 집이 가까우니 걷는 것이 좋아서 차는 필요 없다는 평소의 주장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아무것도 무른 채 그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편하고 좋다는 남자에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여인의 근황을 알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 달리 또 최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일은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변명하고자 함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는 남자와 그 아내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 이거 비밀이지만...  © https://www.vecteezy.com


여인의 직장상사(그 집 가장)가 약정된 월급 외에 부하직원(여인)의 아이들을 위해 교육비 명목의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인은 그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배려심 깊고 인정 넘치는 직장상사라고 하기에는 도를 넘는 듯하다.


그 집 안주인과 아이들도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배려일까? 여인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여길까? 아니, 아내의 직장생활과 수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유로 그들과 무관한 나는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리며 여인의 직장상사에 대한 편견마저 싹트게 한다.


여인에게 의지하는 그 집 안주인이 나라면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한다. 더는 방관 할 수 없어 여인에게 질문을 한다.


- 지금 하는 일이 만족스럽고 마음은 평안한가?

- 자동차와 교육비 통장이 정당하다고 여기는가?

- 그렇다면, 남편에게 비밀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안 주인과 당신의 위치를 그대로 바꿔 보면 어떤가?

- 남편이 지금 동일한 방법으로 당신을 속이고 있다면?

- 두 집안 아이들 모두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

- 그 집 가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여인이 나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으나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인에게 나의 생각을 먼저 전한다.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남편과 아이들에게 사실 그대로를 밝혀라. 가족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눠야 하는 이 남자, 세상의 소리와 격리된 채 바로 앞에서 나누는 타인(아내를 포함한)의 대화와 전화통화 내용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와 배려] 안타까운 아이들, 애꿎은 시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