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공감과 배려
▲ 카페에서 수다 떨기 © https:// www.tattvagyan.com
오래전의 이야기다. 그때는 ‘경양식 집’이 꽤 우아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시절이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 분위기 좋고 돈가스와 크림수프가 맛있는 경양식집에 앉아 있었다. 내가 대각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테이블에는 내 또래의 여성 둘이서 신나게 떠들며 식사 중이다.
‘떠들다’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옆 테이블에서 선명하게 내용파악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두 여인과 나는 일면식도 없는 서로 모르는 사람인데 그들이 신이 나서 얘기하는, 자리에 없는 주인공은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인공과 학창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이어서 과거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자세히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현재(그 당시)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의 현재 삶까지 파악하고 있는 걸 보니 주인공을 만나러 이곳을 찾은 친구들인 듯했다.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경양식집을 나와 버렸다. 혹시라도 그 주인공과 맞닥뜨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앞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동석하지 않은 사람의 사생활을 화젯거리로 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친구, 친척, 이웃, 동료 관계의 사람들은 가벼운 이야기에 쉽게 등장하지만 이야기 속 당사자들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쉽고 가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걱정이라는 허울을 빌어 타인의 크고 작은 아픔과 어려움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들은 이야기를 입밖에 내놓은 일은 없으나, 그 얘기를 듣기 전과 들어버리고 난 후는 누군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나는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 내게 비밀이야기를 많이 해 주곤 했다. 청소년 시기, 대학 시절, 직장생활이 이어지면서도 그 역할은 지속되었다. 내가 가르치던 대학원생 중에는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가 있었다. 아이들 교육, 직장상사·친구 문제, 부부 갈등, 부모 이야기 등 수많은 인간관계 이야기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전공강의의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형성된 래포(Rapport) 덕분이다. 속내를 털어낸 후에 오히려 후련하고 평안함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로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일은 온기 있는 대화가 되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비밀을 일방적으로 담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