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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Apr 09. 2024

[가치관과 삶] 내 글에 담아내는 글감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바다 보다  좋아하게    © Kyrene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분야의 전공을 선택해서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지금껏 잘 살아온 것은 특혜이며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공부라도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걸까, 집어치우면 이런저런 치사한 꼴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공부, 시험, 논문, 학위 그리고 가르치는 이 모든 것들은 가끔씩 나를 억압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이었다.


은퇴 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연장선상에서 자발적인 굴레를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지낸듯하다. 무거운 지식이 아닌, 그동안 함께 어우러져 지내온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살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이다. 일정한 목적과 역할을 위해 구조적으로 형성된 인위적 집단이 아닌 브런치 작가들의 자유 분방한 모임과 글을 만나는 일이 참 좋다.


나는 조금은 별난 습관이 하나 있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나들이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다. 손과 눈에서 떼어 놓기 어려운 책을 집과 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30여 년 동안 우리 가족의 머리손질을 해주는 헤어드레서(Hairdresser)가 한 사람 있다. 이런저런 요구 사항 없이 마음 편하게 머리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을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아담한 미용실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조용한 연주음악(나를 위한 배려)을 들으며 눈을 감고 쉬는 동안 머리 손질은 알아서 해준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외에는 잡지를 권하는 일도 없이 그저 휴식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여행 중에는 오직 자연과 눈 맞추기에 집중한다. 하늘, 구름, 별, 달, 비, 바람, 눈, 햇살, 산, 들, 호수, 계곡, 꽃, 나무, 돌, 동네, 집, 건물, 동물, 사람을 만나고 가끔씩 사진에 담는 일이 행복하다. 흰구름을 안고 있는 파란 하늘과 매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는 달을 바라보는 일을 특별히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하고 불안해서(책과의 분리불안) 몸에 지닐 수 있는 딱 ‘1권만’ 가방에 챙긴다.


▲ 여행 중 어느 해변의 비 온 뒤 무지개  © Kyrene



▲  파란 하늘과 흰구름  © Kyrene



▲  바다 위에 저물어가 는 석양  © Kyrene



▲  늘 설레게 하는 달  © Kyrene



▲  달도 차면 기우나니 …   © Kyrene



▲  태평양 해변의 화사한 꽃무리   © Kyrene



▲  뒷 뜰에서 태어난 거위 가족 나들이  © Kyrene



▲  어느새 다 자란  거위 가족  © Kyrene



▲  뒷 뜰에 마실 나온 아기 사슴  © Kyrene


일생의 학문과 지식이 내 안에 녹아서 가치관을 형성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전문지식이 필요한 글은, 자신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활동하는 젊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누구나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걸어갑시다!  © Kyrene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감사하고 무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감사의 무게가 더해진다. 나를 지켜주고 염려해 주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길을 이 봄에 다시 걸을 수 있음이 이렇게나 많이 감사할 일인 것을 젊은 나이에는 온전히 느낄 수 없다. 그저 바른 생각을 하고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두 손을 모으며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세월이다.


그래서 나는 머리와 가슴속에 넘치게 채우기만 했던 무거운 것들을 조금씩 비워내고, 책임과 의무로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며, 연구실적도 논문걱정도 없이 검은 머리카락을 찾기 힘들게 된 지금의 나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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