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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Jan 23. 2020

더블린의 아침 식사 - 아침을 먹기 위한 아침

아이리쉬 블랙퍼스트를 먹으며,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져서

우리는 매일 아침, 식사와 추가적인 수면 중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수면을 선택한다. 인간은 어쨌거나 우주 속에서 살고 있고 물리의 법칙을 따른다. 현재 상태를 지속하고 싶은 것도, 일종의 물리의 법칙이다. 그래서 잠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물리의 법칙을 거스르고 자연과의 투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쓸 때 없이 말이 거창했지만 아침을 먹는 삶이 부럽고 대단하다.


아침 점심 저녁 중 아침이 특히 맛보다는 에너지를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오늘 하루를 견디기 위해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모두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를 살아내기 위해서 먹는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을 위해 먹는다.


모두가 포기하고 싶은 아침을 지나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오후가 오면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다짐으로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규칙적이고 건강한 삶을 꿈꿨었다. 물론 가능하지 않았다. 언제나 아침과 점심을 합쳐서 먹는 ‘아점’만이 있을 뿐이다. 유럽 살이를 시작한 처음 몇 주 동안은 꾸준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필요했던 건지 시차 적응의 문제로 일찍 눈이 떠지는 아침의 시간이 아까웠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결국 어디에서든 적응을 한다. 다시금 아침을 먹지 않는 날들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아침 겸 점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아이리쉬 블랙퍼스트

아이리쉬 블랙퍼스트는 아일랜드 브런치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이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아점’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은 간단하다. 토스트와 소시지, 베이컨, 토마토, 계란 그리고 콩과 햄. 거창하지는 않지만 푸짐하고 단순하지만 심심하지 않다. 특별할 일 없이 매일 마주치는 평범한 아침의 이유를 구태여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배를 부르게 채우고 하루를 시작하기에 참 좋다.


아이리쉬 티는 일반적인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섞어 먹는다. 차는 따듯하게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조금씩 잔에 옮겨 담으며 설탕과 우유를 기호에 맞게 넣어 마시면 현재의 시간을 길게 늘여주는 것만 같다. 아이리쉬 티(Tea) 문화에는 이런 여유와 넉넉함 묻어 있다. 아일랜드는 특색 있는 음식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분명 이 정서는 온전히 아일랜드의 것이다.


아일랜드의 정서는 언제나 여유를 선물해 준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큰 일을 하나 해치운 듯하다. 힘이 났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오후에는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언제나 먼저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당신들의 도움으로 나의 하루와 현재를 돌아보는 것만 같다.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을 때면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묻는 일이 많아졌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굶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나도 그렇고.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먹고사는 것과 멀어지고 있다. 그저 잘해보고자 하는 일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언가를 또 잃어가는 날들이 늘고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이미 너무 바빠졌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주로 저녁에 이뤄졌다. 아침에 만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 모두에게 그 하루를 견디기 위해 조금은 포기해야 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침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하루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나도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도 당신들도 밥을 잘 챙겨 먹고 다녔으면 좋겠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우리는 정작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고는 한다. ‘나도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며 아침을 시작하면 좋겠다. 말로 하기에는 항상 부담스럽고 멋쩍은 일들이 있다. 대신 아침밥을 챙겨 먹으며 스스로를 달래주면 좋겠다.


귀찮음과 돈을 핑계로 하루 두 끼 먹는 삶을 계속하고 있다. 스트레스성 폭식이 일상이 되었지만 폭식과 야식이 스트레스를 덜어 주면 그 가치를 충분히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여행 가서 꼭 하루 네 끼를 챙겨 먹으라는 조언을 했다. 역시 여행에서는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이 먹는 게 많이 남기는 것이라고 믿는다.


살기 위해서는 두 끼.

즐기기 위해서는 네 끼.

세끼 먹는 삶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가장 건강한 삶을 것이다.


일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야 하며

식사는 맛있게 많이 먹어야 한다.


아침이 있는 하루는 당신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들 잘 챙겨 먹어가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안부 문자 속 ‘밥’에는 아침이 꼭 포함되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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