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 시대부터 신용화폐의 시대까지
물물교환은 물건이나 용역을 직접 교환하는 행위를 뜻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물건'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망라한다. 용역은 품앗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다. 오늘날 '서비스'라고 부른다.
물물교환은 막대기로 작은 짐승을 사냥하던 원시시대부터 최첨단 스텔스기가 날아다니는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포착된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 있어 서로를 돕고 사는 게 유리하고, 교환은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물물교환은 자원 희소성에서 비롯돼
경제 교과서에서는 '희소성'에 따라 '물물교환'이 나타났다고 서술한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없을 때' 우리는 희소성을 체감한다. 그 희소성을 효율적으로 줄여주는 방법이 또 교환이다.
물론 희소성을 줄이는 다른 방법도 있다. 약탈처럼 강제로 타인의 소유물을 빼앗는 형태다. 원시시대에서 횡행했고 전근대 사회에서도 흔했다.
문제는 이들 방법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약탈 행위는 빼앗는 본인도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약탈을 당해야 하는 상대방이 저항하면 나도 다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반사회적 행위로 바로 처벌을 받게 된다.
전쟁이나 약탈이 아니라면 교환행위는 지속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희소성을 줄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교환 거래의 성립으로 희소함이 줄어드는 것이다. 거래하는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예컨대 채소는 있지만 고기가 없는 농부 A를 가정해보자. A의 채소가 필요한 B라는 사람이 있고, 그에게 고기가 남는다면, A와 B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할 수 있다. A는 고기에 대한 희소함을, B는 채소에 대한 희소함을 덜게 된다.
희소한 것들을 얻기 위한 경쟁이 일어난다면 '가격'이 형성된다.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적정선이다. 오늘날은 화폐 단위로 이를 환산한다. 물물교환의 시대에서는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가치'의 접점은 있었을 것이다.
물물교환은 비단 원시시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요새도 볼 수 있다. 무정부 상태이거나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같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빛을 발한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물교환이 대두한다는 뜻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본 패망과 갑작스러운 해방으로 권력의 공백기가 있었던 1945년 즈음 한반도에서는 물물교환이 흔하게 일어났다. 제조업 자본의 90%를 장악했던 일본인들이 물러나면서 공산품 등 생필품이 부족해졌다. 공산품에 대한 희소성이 극심했던 때다. 교환 수단으로 믿고 쓸 화폐도 부족했다.
중국 상인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장사에 나선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이 2016년 한국경제신문에 쓴 '우리 역사에서 물물교환은 20세기까지'에 따르면 당시 중국상인들은 서해상에서 공산품을 우리 상인들에게 팔았다.
중국 상인들은 화폐 대신 우리 농산물이나 광물 등을 받았다. 일본 화폐는 공신력을 잃었고 미국 달러는 귀했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수단이 없어도 거래는 물물교환으로 가능했다.
21세기라고 다를까. 경제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북한 '장마당'에서 일부 물물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2000년대 한때 개성공단에서 풀린 초코파이가 인기 교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남미 모 국가에서는 화폐 대신 용역을 매개로 한 차용증이 돈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차용증은 일종의 약속 증서다. '일주일 뒤 빵으로 갚겠다' 혹은 '집 앞을 대신 비로 쓸겠다'류다.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머슴살이로 빚을 갚곤 했다.
인류사와 함께 시작한 물물교환이지만 불편한 점도 적지않았다. 우리의 경제사가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보다 안전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거래, 그러면서도 편리할 수 있는 거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우선은 물물교환 자체가 불편했다. 각자 처해진 상황에 따라 느끼는 희소성이 다르다보니 원하는 물건이 다르면 거래가 되지 않았다. '나는 쌀이 필요한데 너는 보리가 필요하다'면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다.
거래 자체의 불편함도 컸다. 곡식은 장에 들고 오기 무거웠고 고기는 썩기 쉬웠다. 가치 기준도 달랐다. '쌀 1kg에 고기 1kg'을 누군가는 주장하겠지만 '쌀 1kg에 고기 500g'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물물교환의 단점 극복
썩지 않으면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돈의 역할을 너도나도 찾게 됐고 그 대체품이 여럿 등장했다. 이중 하나가 조개 껍데기. 썩지 않을뿐더러 자연 상태에서 구하기도 좋았다. 광석 같은 것도 훌륭한 돈의 역할을 해줬다. 조선시대에는 쌀과 보리 등 곡물은 물론 삼베와 같은 천이 돈의 역할을 했다. '쌀 몇되 혹은 베 몇 필' 식으로 가격까지 매겼다. 초기 화폐의 모습이었다.
이들 화폐 대용품은 초기 금융에도 활용됐다. '빌리고 갚으면서 이자를 내는 행위'다. 흉년, 춘궁기 때 정부가 농민들에게 식량을 빌려주고 추수기 때 이자까지 쳐서 받는 구휼은 (기록상) 삼국시대 때도 존재했다. 민간에서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까지 받는 금융의 형태는 많았다.
그러나 이런 경제활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쌀이나 베 등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대규모 무역 등에 있어서도 곡물은 부적합했다. 도시와 국가의 규모가 커질 수록 보다 편한 돈의 필요성이 커졌다. 가벼우면서 편리하고, 믿을 수 있는 돈의 모습이다.
화폐와 신용의 출현
도시가 만들어지고 국가가 성립되면서 인류 사회도 복잡해졌다. 물건을 교환하는 데 있어 편리하게 쓰일 만한 ‘단위’가 필요해진 것. 거래의 매개체가 되는 돈의 개념이 고안됐다.
이 돈이 현실로 발현된 형태(화폐)는 시대와 사회와 따라 달랐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원시 사회에서는 조개 껍질류가 돈의 역할을 했다. 예쁘게 생겨 구하기 힘든 조개일 수록 더 비싼 가치가 매겨지는 식이다.
농경의 시작과 초기 화폐의 등장
농경 사회가 되면서 돈의 역할을 곡물이나 가축이 하게 됐다. 구하기 쉽고 식량으로도 쓸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소유와 교환 가치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실제 기원전 9000년경 수메르 문명에서는 교환의 단위로 가축을 사용했다고 한다. 초기적인 도시의 형성과 농경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한다. 이후 나오는 주화도 그 단위가 밀의 다발을 세던 ‘세켈’에서 유래됐다. 이때가 기원전 3000년경이다.
주화를 녹이면 농기구나 무기로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동전 하나가 식량과 비교해 큰 쓸모를 갖는다고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하면 동전 하나가 ‘사람들의 약속’에 따라 밀 포대 만큼의 교환가치를 갖게 된 셈이다.
이른바 신용이 전제된 사람끼리의 약속으로 화폐의 크기가 보다 작아진 것이다. 큰 거래는 당연히 금과 은이 사용됐다. 이전 사람들과 달리 거래에 있어 엄청난 편리를 누리게 됐다.
참고로 세켈이란 단위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왕국을 계승한다는 현 이스라엘의 화폐 단위 중 하나가 또 세켈이다. 가장 오래 쓰이기 시작해 여전히 사용되는 화폐 단위다.
중국에서도 주화가 쓰였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져 퍼진 ‘명도전’은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과거 고조선 지역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면서 ‘고조선의 화폐였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주화가 ‘칼’ 모양이다보니 오늘날 우리 ‘돈’이란 단어의 원형란 얘기도 있다. ‘칼’을 한자말로 옮겨 읽으면 ‘도’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가 커지면서 좀더 가벼운 화폐를 고안하게 됐다. 물물교환 때나 곡물과 가축을 교환단위로 쓸 때보다 주화가 편했지만,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이 마저도 불편해졌다. 국가 정부가 갖는 힘(보증)도 강해지면서 ‘약속 증서’만으로도 화폐로 쓸 수 있게 됐다.
최초의 지폐는 북송 시대였던 1024년 나왔다고 한다. ‘교자’라고 불린 이 지폐는 종이에 쓰여진 문양과 글자, 정부의 보증만으로도 동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북송의 상품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조폐와 인쇄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쓰일 수 있게 됐다.
서양에서의 지폐는 좀더 다른 맥락에서 나왔다고 한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라 지역별 왕조 중심의 왕국이었던터라 북송 교자와 같은 형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만 무역의 발달과 금을 다량 소유한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이 발행한 ‘금 보증서’ 같은 게 지폐의 원류가 됐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부자들이 금을 금 세공업자에게 잠시 맡겨놓았다고 치자. 금 세공업자는 곧 돌려주겠다는 식의 ‘보증서’를 발행한다. 한낱 종이 보증서에 불과하지만 부자의 금과 교환될 수 있다는 약속이 전제됐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가졌다.
또다른 맥락에서는 ‘돈을 곧 갚겠다’라는 어음이 지폐의 역할을 했다. 이런 어음은 조선시대에서도 쓰였다. 지폐처럼 유통되지는 못해도 ‘약속’이 돼 있다는 점에서 화폐로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
주화와 지폐, 신용이 뒷받침돼야
한낱 종이가 화폐로 인정받는 중요 전제가 있다. 언제든 실물로 교환된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망할 가능성이 낮은 정부가 강력하게 보증해준다. 이는 실물 없이 거래하는 ‘신용’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사실 신용은 정부의 보증없이 개인 간 약속만으로도 유지된다. 한 예로 태평양에 있는 야프섬을 들 수 있다. 그곳은 20세기까지 오지로 취급받았지만 섬 주민들은 지금봐도 훌륭한 신용 거래를 했다. 거래되는 물품은 생선과 코코넛 등 변변치 않았지만 고도로 발전된 화폐 시스템이 있었던 것. 그들은 지름 30센티미터에서 360센티미터에 이르는 대형 돌을 화폐로 쓰고 있었다. 이 대형돌은 각자 가치를 갖고 있다. 이 돌에 대한 소유권을 매개로 거래하는 것이다. 코코넛 10개를 받는 대신에 갖고 있던 ‘페이’의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기는 ‘약속’을 하는 식이다. 맹랑하게 생긴 돌맹이가 사람들의 약속에 따라 화폐의 역할을 한다.
이젠 화폐마저 물리적으로 만져지지 않는 시대가 됐다. 단지 신용만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모바일뱅킹도 따지고 보면 은행을 통한 신용거래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한 발 더 나아가 은행이나 정부 없이도 신용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세줄 요약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돈’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집니다. 관념적인 돈을 물리적인 실체로 만든 게 바로 ‘화폐’입니다.
-화폐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볍고 쓰기 편한 형태로 바뀝니다. 지폐는 시장 경제가 크게 발달한 상황에서 국가와 같은 강력한 존재의 보증으로 쓰이게 됩니다.
-최근 화폐는 실체가 없는 신용의 형태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바일뱅킹도 은행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