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만 보냈을 뿐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탈고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원고 보냄'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어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지난 10월 계약을 하고 11월부터 쓰기 시작한 원고다. 약 3개월. 11월 한 달은 대상포진에 겔겔됐고, 12월 중하순은 연말 분위기에 휩쓸렸다.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했다.
1월 중순에 1차 작성을 마치고 한 열흘간 퇴고를 했다. 때마침 낮에 해야하는 주업무의 강도가 높아져 저녁 느즈막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완벽한 글'은 없다고 믿어왔는데, 고치면 고칠 수록 부끄러웠다. 일반 대중을 위한 입문서이고 출판사도 내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 지식의 짧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첫아이와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들었던 느낌이라고 할까.
첫째는 그냥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모든 게 서툴렀고 힘들었다. 건강하게 잘 성장해줬다는 것 자체로 감사했다. 둘째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가 되어 그런 게 아닐까. 그냥 모르고 지났을 과거의 실수와 잘못이 떠올랐다.
첫번째 책도 그랬던 것 같다. 매주 주말에 쓰던 '칼럼도 아니고 기사'도 아닌 글을 보고 출판사 대표가 연락을 해왔고, 미팅 당일 계약을 했다. 그가 내게 원했던 책도 '입문서 수준'의 대중서였다. 주변 지식들을 잘 정렬해서 보기 좋게 배치하는 정도. 첫 책이니만큼 가슴에 벅찼고 기대도 컸다. 학생 시절 시험공부 할때도 하지 않던 '자정 넘어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어달을 보냈다.
그때가 2021년 초입. 주식 투자붐이 불을 일으키던 때였다. 2020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주식투자가 출판계까지 강타했고 난 그 콩고물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나에게 연락을 했던 출판사의 주식투자 설명책이 대박을 내면서 나에게도 '책을 쓸' 기회가 생겼다고나 할까. 초보 투자자들을 위한 금융지식 입문서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내게 이를 요구했다. 물론 나는 수락했고. (만약 이때 시간을 두고 인플레이션에 대해 썼다면 어땠을까.)
그 출판사는 이미 들떠있었다. 주식책이 너무 잘 나갔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나 할까. 한글문서 포인트 10으로 A4용지 240매 정도를 썼던 것 같다. 편집 기간에는 유튜브 영상도 만들었고. 출판사도 나도 할 수 있을 만큼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서 그 책을 보면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이 느껴졌지만 그때는 몰랐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할까. 2021년 3월말에 원고를 넘겼고 한달여간 편집기간이 있었다. 책이 수월하게 나오는 게 아니란 것을 그때 알게됐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중형차 한 대 살 정도의 돈을 투자하는 것이니 신중할 수 밖에. 이런 맥락에서 출판업계에 데뷔시켜준 그 출판사에 감사했다. 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그 투자 붐이 아니었다면, 그 출판사가 나를 '패닉바잉'해 계약하지 않았을테니까. 타석에 설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는 나에게 희망을 줬고, 또 시대는 나에게 실망을 줬다. 책이 완성되고 출판이 되어 서점가에 깔리기 시작한 시기가 2021년 7월 12일. 아직도 그 날짜를 또렷이 기억한다. 내 첫 책이 교보문고 매대에 처음 올라간 날짜이면서 코로나19 4단계가 발령됐던 때다. 사회적거리두기가 격상돼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도 극에 달했던 때다. 확진자가 급증했으니. 그날 서점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없었다. 교보문고 매대에 몇권 올라가 있는 것을 봤고 줄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터덜터덜 걸어서 나왔다.
우연일까, 출판사의 마케팅부장도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한 1~2주 열심히 활동하면 순위를 끌어 올리고 이에 따라 많이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사람이었다. 책 표지도 전작(주식투자로 성공한 책)과 비슷한 시리즈로 가니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여겼다. 가장 힘줘서 마케팅을 해야할 때 부재중 상황이 되니 마케팅 활동이란 게 온전할까.
시점도 안좋았다. 7월에는 이미 금리 인상 분위기가 무르익던 때였다. 집값이 너무 올랐고 주식시장은 지나치게 과열됐다. 미국내 물가 수준도 심상치 않았다. 근 20년만에 처음 보는 수준의 물가 상승률이었다. 슬금슬금 차익 매물이 나오던 시기였다. '주식 투자 더 하라'면서 부추길만한 책이 팔릴 시점이 아니었다.
그렇게 1쇄가 나갔다. 2쇄까지 찍는다고 했는데 그 수량은 1쇄의 절반 정도였다. 혹자는 그 정도면 선전한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만족을 떠나서 출판사 매출에 큰 기여를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 출판사가 잘되어야 이후에 또 책을 쓰고 낼 수 있지 않겠던가.
두번째 책. 첫번째와 달리 '삶이 극적으로 바뀐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앞선 현실을 경험해봤고,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삶의 흐름'은 좁고 가파르기 때문. 한국의 출판 시장에만 하루 1000권의 신간이 나온다는데,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지고 돈을 버는 책은 '바늘 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 저자의 지명도라도 높다면 그 구멍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겠지만.... 나에게 닥친 현실은 좁으면서 높다.
두번째 책의 원고를 넘기면서 기대가 되는 점은 하나다. 돈을 번다거나 내 지명도가 높아진다는 것보다 세번째 타석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라는 기대다. 두번이나 타석에 올라서본 경험이 있는 타자라는 점에서 조금더 수월하게 세번째 타석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행운처럼 두번째 타석에 올랐고, 날아오는 공을 힘껏 쳐보기라도 했다. 파울이 될지, 안타가 될지 혹은 삼진으로 내려갈지는 그 다음 얘기가 되겠지만.
안타도 타석에 많이 올라가봐야 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홈런을 치고 영웅이 되려는 생각보다 어떻게서든 타석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우선일테고. 타석에 오르기 전에 스윙 연습을 좀 많이 해놓는 것은 기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