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되다

넉달간 이어졌던 탄핵정국의 종료

by 팟캐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대행은 시계를 한 번 보고 이 같이 말했다. 21세기 한국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순간이었다. TV를 보던 기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이구나.’


2023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지 된 지 123일 만이었다.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혼란스러웠던 정국이 이렇게 정리됐다. 남은 것은 뒷수습이었다. 윤석열 정권을 종결짓고 조기대선을 통해 새 정부를 출범시켜야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문장이 갖는 강력한 힘이었다. 폭발할 것처럼 보였던 광장 민심은 어느샌가 정돈된 모습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성토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사건·사고는 없었다. 불확실성의 해소라고 할까. 우리 국민과 시장은 새 리더십의 등장을 요구했다.


다시 시간을 앞으로 되돌려 4월 4일 오전 7시 40분 출근길. 드디어 ‘그날’이었지만 국회 주변은 평온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 표결 당시와 달리 모인 사람도 많지 않았다. ‘헌재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나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를 향했다.


국회 안팎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대부분 인용을 예상했지만 뜻밖의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우려를 하는 모습이었다. 예상 외의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졌던 터라 상식적인 판단도 의심이 됐다.


선고 시작 10분 전인 오전 10시 50분쯤, 국회 기자실의 TV 모니터 대부분이 켜졌다. 헌재 선고 생중계는 유튜브로도 볼 수 있었지만, TV 방송이 1~2분 더 빨랐다.


11시 정각,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했다. 가운데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이 또렷하게 보였다. 각 방송 화면도 그를 중심으로 잡았다. 그는 선고 결정문을 읽기 시작했다. 국회 기자실은 물론 각 회사, 학교, 역사 등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모두가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문 권한대행은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와 통과 과정이 정당하다는 판단부터 밝혔다. 윤석열 측이 주장한 ‘절차상의 하자’ 주장은 기각됐다. 초반에 나온 이 한번의 판단만 듣고도 직감할 수 있었다. ‘탄핵 인용이구나.’ 관건은 반대 또는 소수 의견이 얼마나 나올지였다.


이후 탄핵소추단이 제기한 사유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이어졌다.


첫 번째,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 위반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만 선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이 들었던 이유들, 즉 국회의 탄핵소추 추진, 일방적 입법권 행사, 예산 삭감 시도 등은 실체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섯 가지 탄핵 사유 중 하나라도 인정되면 파면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이 판단에서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사유에서 윤석열 측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지더라도 파면은 기정사실이었다.


두 번째,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명백한 법률 위반이 있었다고 헌법재판소는 봤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심의와 국무총리 및 관계 국무위원의 의결 절차가 필요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국회에 통고하는 절차도 없었다.


세 번째,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점도 위헌이었다. 국회의원의 출입을 방해하고 국회의 권한 행사를 저지하려 한 것으로,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과 불체포 특권을 침해한 행위였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려 한 시도는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행위로 간주됐다. 이는 헌법 제77조 3항과 계엄법 제9조 제1항을 위반한 것이다.


예상 밖의 판단도 있었다. 전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 등 법조인에 대한 체포 지시가 있었던 점이다. 이는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를 침해한 것으로, 3권 분립 원칙과 법치주의 원칙을 위반한 중대한 사안이었다.


문 재판관의 결정문 낭독은 차분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웠다. 특별한 법률 지식이 없어도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이 왜 정당한지 알 수 있었다. 유시민 작가는 “보통 사람의 언어로 쓰였다”며 “헌재의 진일보한 면모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고매한 양반집 도련님들 같아 보이는 헌법재판관들이 무릎을 굽혀 소시민들의 시선에 맞췄다고나 할까.


듣는 이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 문장도 있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그동안 비상계엄에서 재산상 손실이나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경고성 계엄’이라고 포장했다. 계엄 의도를 정당화하려 했다. 헌재는 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부정했다. ‘너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과 군경이 적절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계엄군으로 국회를 침탈했던 죄책감에 시달렸을 군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던 ‘젊은 그들’에 대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3일 그날 밤 군 미필자인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그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불명예를 안겼다. 이런 맥락에서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위로가 됐다.


결과도 깔끔했다. 8대0의 탄핵 인용이었다. 보수성향 재판관이라면서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여겼던 재판관들도 전부 윤석열의 파면을 찬성했다. 야당의 줄탄핵에 대한 문제점을 짚은 소수의견이 있었지만,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권한 남용이면서 위헌적이고 절차 위반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1060일 만에 ‘전 대통령’이 되어, 대부분의 예우를 박탈당한 채 ‘내란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그의 몰락이었다. 내란죄가 인정된다면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다. 영광의 자리인줄 알았던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파멸의 자리가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애초에 국가지도자로서 함량 미달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정치적 수완이 부족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다. 전략적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수’를 보는 눈도 부족했다.


어쩌면 윤 전 대통령은 여의도 국회 정치인들을 우습게 봤을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욕한다고 본인도 질시하고 경멸했을지도 모른다. 권력에 굴종하고 ‘내로남불’로 일관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할 부분은 ‘성급한 일반화’와 ‘집단에 대한 편중적 사고’다. 특정 집단이라고 해도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여 있다. 그중 일부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전체 집단을 죄악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전부다 부패했을까? 대부분은 열심히 산다. 그들의 역할 자체가 ‘갈등 중재’이고 ‘적과의 대화’인지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 정치인들의 조언을 윤 전 대통령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정권의 허무한 몰락은 막았을지 모른다.


또 하나. 국가 지도자와 술의 관계다. 1990년대 러시아를 이끌었던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술 애호가로 이름났다.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옐친만큼은 아니더라도 술을 좋아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침 출근길이 늘 늦었던 것도 전날 술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계엄령도 술김에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을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이며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 행위다.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끝나고 한 사람이 주목받으며 떠올랐다. 문형배 재판관이었다.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경남 하동 출신의 가난한 농민의 장남이었다는 것을 밝혔던 영상이 돌면서 회자됐다. 그때 문 재판관은 독지가였던 김장하 선생을 언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의 그 김장하 선생이었다.


문 재판관의 고백은 그때도 지금도 우리 사회에 울림이 됐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간 자리에서, 선생님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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