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윤석열이라는 한 시대의 상징이 탄핵과 파면이라는 비극적 서사로 퇴장하게 됐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새로운 주인공을 뽑는 과정이 시작됐다.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고도 모순적이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대선 준비에 들어갔다. 이름이 알려졌다고 자부하는 여권 ‘네임드’ 인사들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정세를 살피며 ‘라인타기’에 들어갔다.
윤석열의 파면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2022년 이후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줄곧 유지해온 이재명 대표는, 멋드러진 ‘티저 영상’을 공개한 뒤 파면 선고 일주일 후인 11일에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언론사 기자들은 다른 부분에서 놀랐다. 예상보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려했던 폭력 사태 등은 없었다. 전광훈 목사 주도로 토요일, 일요일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긴 했지만,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다. 일부 기자들은 혹시라도 소요 사태가 일어날까 단단히 몸조심을 하고 다녔다. 호신용이라고 할까, 보신용이라고 할까, 태극기와 성조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굳이 필요없게 됐다.
이유는 왜일까. 첫 번째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 완벽에 가까울만큼 논리적이었다. 왜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파면될 수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따져 한편의 글로 구성해 놓았다. 이를 뒤집기란 어려울뿐더러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국가 시스템에 대한 ‘폭거’였다.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의 최후의 보루라는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두 번째는 조직적으로 소요 사태를 일으키기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부분 노쇠했다.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중장년과 노년층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 이상을 형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쉽게 말해 ‘(재산이든 경력이든 명예든)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이 다른 나라의 폭동과는 달랐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고나 할까. 중장년, 노년 지지자들은 혹여 감옥이라도 가거나 사법처리가 되면 그들의 재산은 물론 명예까지 잃을 수 있다. 대통령이 싫고 좌파 빨갱이가 싫을 뿐이지 한국이란는 사회 전체를 뒤집어 엎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안정된 사회일수록 중산층이 두텁다.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가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는데, 파면으로 끝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새롭게 대통령 선거가 열리고 이것을 통해 자기들 마음에 맞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 국민의힘도 빠르게 수긍했던 것도 여기에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마음은 아프지만 결정을 수용한다”면서 조기대선 체제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선거다. 굳센 의지와 결기로 재무장하자”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바로 다음날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선거 관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장에 황우여 전 비대위원장을 위촉했다. 더불어민주당보다도 빠른 행보였다. 달리 보면 그들이야말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단절을 더 간절히 원했을지 모른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홍준표 대구시장도 상경 채비를 갖췄다. 대선용 책을 집필했고 그의 측근들은 홍 시장의 출마를 시사했다. 탄핵 정국을 보내며 신데렐라처럼 보수 대표주자가 됐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대선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서둘러 나오려고 했다.
‘이재명 독주’로 여권 대선 후보군들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수많은 인사들이 대선 도전을 선언하며 나왔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당대표를 했던 이정현 전 대표, 나경원, 안철수 의원 등까지 족히 15명 정도가 출마를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모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대선 출마라는 이벤트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나왔다. ‘대선 출마 선언’ 자체만으로도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옛적 정치인으로 잊혀졌던 사람들이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이재명 대표 외에 두드러지는 주자가 없었다. 그 와중에 김두관 전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김동연 경기지사가 출마를 선언했다.
이 대표의 출마 선언은 웅장해 보였다. 그주 수요일에 당대표직을 사퇴했고 목요일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여느 주자들처럼 본인이 직접 등판하지 않았다. 존재감만 내비칠 뿐이었다.
그러면서 ‘준비된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준비된 대통령’ 표어를 연상시키는 연출이었다.
다음날 그는 국회 소통관에서 다수의 현역 의원들과 함께 나왔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경선 캠프 인선을 발표하며 친명과 비명 등 계파를 초월한 통합 캠프임을 강조했다.
만약 그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문민정부 이후 최고 수준의 영향을 지닌 대통령이 될 터였다. 국회 절대 과반수 의석을 보유한 여당을 배경으로 행정권력까지 장악하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가 될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몇 년 전과 달리 요새 정치인들은 단체 카카오톡방 만들기를 즐겨 한다는 점이다. 특히 대선 후보들은 대선캠프를 구성하는 동시에 공보방을 만든다. 기자들과 캠프 공보팀원들이 있는 방이다.
단톡방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들이나 당이나 모두 편리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당이나 유력 정치인의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고, 당은 가능하면 많은 기자들에게 널리 퍼뜨릴 수 있다. 메일이나 일대일 메신저보다도 빠르다. 20~30년전 언론 환경과 비교한다면 천지가 개벽할 만한 수준의 속도다. 언론 공지방으로 카카오톡방은 톡톡히 효과가 높다.
실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언론 공지방의 경우, 각각 100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정당뿐 아니라 개별 정치인들도 ‘공보방’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톡방을 운영한다. 대부분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서비스를 활용하지만 일부는 일반 대화방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회 출입기자들, 특히 정치부 기자들은 기본 여러 개, 많게는 수십 개의 단체톡방에 속해 있다. 크게는 출입 정당 단위, 작게는 개별 의원이 운영하는 공보방, 더 작게는 친목방(일명 ‘꾸미방’)까지 그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국회를 처음 출입하는 기자들이 단체톡방의 수에 압도당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전 출입처와 달리 정당, 의원실, 관련 기관 등에서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채팅방이 많다. 여기에 텔레그램 등 타 메신저까지 포함하면 숫자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정치인들의 메시지, 일정 공지, 지라시성 정보까지 이 채널들을 통해 흘러든다.
대선 주자들도 카카오톡 공지방을 경쟁하듯 만들고 있다. 빠르게 공약이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이 기자들과 일일이 접촉하기 어려운 만큼, 단체톡방은 유용한 공보 수단이 된다.
때로는 이 톡방의 규모가 기자들의 ‘관심도’나 ‘주목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방에 참여한 기자 수가 많은 후보일수록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고도 해석된다. 실제로 4월 18일 오후 5시 기준, 가장 많은 기자가 참여한 공지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방으로 1007명이었다. 이어 한동훈 후보가 784명, 홍준표 후보 688명,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680명을 기록했다. 실제 지지율과는 다를 수 있지만, 기자들의 ‘정보 접근 채널 선택’을 통해 관심도를 짐작할 수는 있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지글뿐 아니라 업무 대화, 사적 대화까지 하루 종일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은 기자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어떤 기자는 업무용 폰과 개인용 폰을 따로 들고 다니며 주말엔 업무폰을 꺼두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무단 초대도 골칫거리다. 누군가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방에 기자들을 무작위로 초대하는 일이 반복된다. 마치 스팸메일을 보내듯,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단체방을 활용하는 것이다. 텔레그램처럼 익명성이 강화된 메신저는 물론, 카카오톡조차 ‘정보 공해’ 수준의 무단 초대가 빈번하다.
4월 17일 ‘윤 어게인 신당 창당’ 카카오톡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 단체방에 기자 400여 명을 무단 초대한 뒤, 오픈톡방을 개설해 언론공지방처럼 운영하려 했다. 문제는 이 방의 입장이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사실상 강제 초대였다는 점이다. 방 입장 비밀번호가 ‘1203’인 것도 의아스러웠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벌어진 혼란이었다. 오픈채팅방에서 기자가 아닌 인물들이 들어와 ‘계엄령 재선포’를 주장하거나,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반대하는 이용자들이 도배를 하는 등 소위 ‘테러’ 수준의 충돌이 벌어졌다. 일종의 디도스 공격처럼 수많은 메시지를 퍼부어 채팅방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윤 어게인 신당’은 실체보다 단톡방 논란으로 먼저 퇴장당했다. 오픈채팅방은 극단적 진영 이용자들 간의 선동과 역선동이 얽힌 ‘비정상적 대리전’의 무대로 변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