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 이재명, 나도대선 한덕수

by 팟캐김

2024년 12월 3일 이후부터 한국 정치판은 예측 불허의 연속이었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진 것도, 한덕수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결정도 그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파면된 이후에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치평론가들의 전망이나 기자들의 박스기사가 하루만 지나도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처절하게 확인해야 했다. 2025년 4월 30일과 5월 1일은 그 단면을 보여준 이틀이었다.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렸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누워서 판결문 낭독을 듣던 중,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당초 예상과는 한참 빗나간 결과였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전원합의체 일정을 이날로 잡고 2심 판결을 검토한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은 ‘상고기각’을 예상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은 ‘파기자판’(하급심 판결을 깨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을 희망했지만, 가능성은 낮았다. 상고기각이나 파기환송이 유력하다고 봤다.


그중에서도 상고기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2심 재판부는 지난 3월, 이 후보의 무죄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대선 승리를 낙관하던 이들에게는 상고기각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보수 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조차도 이 후보의 무죄와 상고기각을 예측했다.


그러나 그날 조희대 대법원의 주문은 달랐다. 유죄 취지로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기자들의 예측과 달리 중형을 선고했던 1심, 감형 정도일 것이라 여겼던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되돌아갔다. 기자들과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은 이번에도 틀렸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 고등법원은 사건을 접수해 배당 절차를 거친다. 환송 사건은 내부 규정과 전자배당 시스템에 따라 특정 재판부에 배당된다. 이후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 뒤 선고한다. 다시 말해 이 후보의 사법리스크는 3월 22일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사법리스크가 다시 살아난 셈이다.


민주당 지지 유튜버들과 논객들은 일제히 분노를 표했다. 사법부가 유권자의 판단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는 당시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해 그들의 발언을 경청하던 중이었다.


평범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5월 1일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급박하게 도는 날이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격앙됐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친문계로 분류되며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에 쓴소리를 하던 고민정 의원 등도 대법원 판결을 일제히 비난했다.


오후 3시에 파기환송 결정이 내려지고, 이어 오후 4시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차담회를 열었다. 국무총리직 사퇴를 공식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정치권의 소문대로, 대선 출마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1949년생, 일흔여섯에 두 차례 총리까지 역임한 그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25년 4월 기준 이미 대통령에 준한 예우를 받는 관료였지만 뒤늦게 나섰다. 흔히 말하던 ‘난가병’일까.


민주당은 이를 바라만 보지 않았다. 즉각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안도 꺼내 들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일명 ‘대대행’(대행의 대행)으로 불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퇴하고, 최 부총리는 탄핵 직무정지 위기에 놓이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초 이날 저녁에는 약 13조 원 규모의 추경안이 상정돼 통과될 예정이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 맞춰 심우정·최상목 두 인사의 탄핵안을 보고하고 표결에 부치려 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결정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두 탄핵안은 모두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 3시 파기환송 결정 이후 급히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국회 본회의에 추경안과 함께 상정된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안은 그의 자진 사임으로 무산(불성립)됐다. 그는 추경안 통과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을 마지막 업무로 남기고 물러났다.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을 임명하며 (한덕수보다는)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다고 평가받던 그의 마지막 행보였다.


국정서열 1위 대통령은 어설픈 비상계엄을 감정적으로 발동했다가 탄핵당했고, 서열 2위 국무총리는 한 차례 탄핵을 겪고 복귀한 후 대통령 출마에 나섰다. 서열 3위 경제부총리는 탄핵 직전 스스로 물러나며 공석이 되었고, 서열 4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헛웃음밖에 안나오는 권한대행의 도미노였다.


민주당은 이미 탄핵을 남발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역풍을 맞을지 몰랐다. 다른 누군가가 깜짝스타로 등장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날인 5월 2일 아침, 정치권의 이목은 온통 한덕수에게 쏠렸다. 그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는 예고가 나왔다.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한덕수였다. 이재명 후보가 철원과 인제 등 접경지역을 방문하며 안보 행보를 이어갔지만, 언론과 중도·보수층의 시선은 한덕수에게 집중됐다.


오전 9시 50분, 기자회견장은 이미 취재진과 한덕수 선대위 관계자,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소통관 밖에는 보수 지지자들이 운집해 “개딸은 물러가라”, “한덕수!”를 외치고 있었다. 반이재명, 반민주당 정서가 2~3월에는 김문수, 5월에는 한덕수에게 흘러든 모양새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강력한 대항마로 한덕수가 주목받는 것은 좋지만, 자신들의 경선이라는 ‘잔치’는 완전히 밀려났기 때문이다. 한동훈, 김문수 후보는 관심권 밖으로 밀렸다. 특히 김문수 후보는 지하철에서 청년을 만나는 이벤트를 벌이며 이목을 끌어 보려고 했지만 큰 관심을 못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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