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사회 돌입→전통적 은행 사업 다각화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시중은행들이 환헷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 배상안에 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요구한 ‘도의적 책임’ 부분을 거부한 것인데요, 사법 기관에서 이미 은행들에 면죄부를 준 이상, 은행들의 키코 피해 기업 보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것때문에 은행들이 욕을 먹고 있는데요, 가까이로는 해외금리연계 파생상품(DLF)와 라임자산운용 사태로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DLF 사태는 독일 등 유럽 국가 국채 수익률의 갑작스러운 하락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큽니다.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업력이 짧은 사모펀드 상품에 대한 제대로된 모니터링이 없었던 원인이 크고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을 충분히 비난할 수 있습니다. 관리 부실의 측면에서 은행들은 책임을 피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은행들은 이런 위험성 높은 파생상품을 팔아야 했을까요. 원래 은행의 역할인 예금을 받아 대출자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그 차이(예대마진)를 수익으로 가져가면 될텐데요.
은행이 비난 받는 이유
은행이 비난받는 이유는 간명합니다. 고객들의 귀중한 자산을 보호(원금보장)해줘야할 은행이 고객에 손실을 안겨줬다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설마 은행에 돈을 넣고 손해가 발생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했고요. (앞으로 이 생각은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은행이 DLF를 판매하면서 ‘원금손실 가능성 제로’에 자신했던 것은 위험회피 장치가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적절히 섞어 헷지(위험회피)를 한 것이지요. 위험회피 정도를 높이면 안전형 상품이 되고, 좀 손해를 봐도 수익률에 방점을 둔다면 위험투자형 상품이 됩니다. 이것에 대한 선택은 개인이 되겠지요.
게다가 설령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고 해도, ‘미래 어느 시점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요.(ex. 녹인 구간 설정)
그런데 문제는 은행 창구(대부분은 VIP창구)에서 이런 DLF 상품의 위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혹은 고객이 이런 위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수 억원대 돈을 맡기시는 분들중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라임자산운용 사태도 같은 맥락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수익이 좋다’라고 해서 고객에게 추천되긴 했는데 혹시 모를 원금손실의 위험성이 간과됐던 것이지요. 수백, 수천가지의 사모펀드 상품이 팔리는 은행 창구에서 라임자산운용만 콕 짚어서 이들 투자 상품에 대해 실사를 할 수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임자산운용 내부에서 ‘모럴헤저드’(도덕적헤이)가 발생한다면 은행이나 고객은 알 수가 없었던 것이고요. 사모펀드 특유의 폐쇄적인 운용 구조도 여기에 한몫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모단체가 나와 활동한 역사가 일천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선진국 헤지펀드와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유럽의 로스차일드 같은 곳은 이미 1600년대부터 투자 운용을 해왔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업력도 짧고 투자 운용에 대한 노하우가 잘 검증되지 않은 사모펀드 상품을 팔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비난받을 만 합니다.)
라임자산운용 관계자들은 해외 자산 투자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탐욕까지 부립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와서 더 많은 투자를 한 것입니다.(TRS)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해서입니다.
이런 방식은 운용 수익률이 좋을 때는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지만, 운용 수익률이 꺾이거나 마이너스로 가면,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 됩니다. 고객 손실을 우려한 증권사가 돈을 빼는 순간 ‘펀드런 사태’가 일어날 단초가 생기는 것이지요.
한국 경제의 변화…선진국 저금리 사회로
최근 금융사들은 ‘저금리’에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재료비’가 하락하면서 예전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앉아서 따박따박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면서 돈을 불리는 일이 쉽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말이죠.
지난 5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5%로 낮췄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우에 따라 0.25%로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태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들도 기준금리를 0.5% 밑으로 내렸다”면서 “그만큼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도 저금리 자체보다 더 무서운 건 디플레이션입니다.(정부의 최근 경제정책 목표는 혹시 모를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데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의 한 현상 중 하나가 ‘물가 하락’인데, 다시 말해 ‘돈의 가치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쓰거나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그냥 집에 쌓아놓고 있는 게 더 이익이죠.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가정용 금고 판매가 쏠쏠하답니다.
게다가 디플레이션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활동성을 저해합니다.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은행에 돈을 빌릴 이유가 적어지죠. (제로 금리로 돈을 빌려줘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일본이 이런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됩니다. 돈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와중에, 대출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마저 줄어드니 말입니다. 기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사이의 마진)’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 절실해진 것입니다.
돈놀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골드만삭스나 JP모건처럼 직접 트레이딩에 나서 운용 수익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규제 현실에서 은행이 직접 나서 고위험 돈놀이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상품을 판매해 수수료를 올리는 게 그나마 괜찮은 선택지입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펀드 등을 판매하는 것이죠. DLF나 라임자산운용의 투자 상품 판매 수수료가 그 예가 되겠죠.
두번째는 각 은행의 지배구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오너’가 없습니다. 주주들이 주인이죠. 이를 사외이사들이 주주들을 대리해서 전문경영인을 세웁니다. 이들이 바로 각 금융지주사들의 회장입니다.
각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들은 자신의 임기내 성과를 내야합니다.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로 ‘매출 우상향’(매출 증가)을 기록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상품 다양화와 사업 다각화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성과를 강요해야하는 것이고요.
은행 창구 직원들 입장에서는 불완전판매에 내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평생직장인 은행에서 일하려면 성과를 내야하는 것도 있죠. 자의든 타의든 고객보다 은행에 더 유리한 상품을 판매하기 쉽습니다.
저금리 사회에 맞는 투자법 강구해야
저금리 사회는 빚을 권하는 사회입니다. 투자를 하고 운용을 해서 수익을 거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처럼 은행이 ‘서민들의 믿을만한 언덕’이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합니다. 과거처럼 ‘원금보장을 해주는 곳’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금자가 아닌 투자자로서의 마인드를 갖춰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쉽지 않은 현실이죠.
서글픈 현실일 수 있는데, 과거 부모님 세대처럼 월급을 모아 저축하면서 알뜰살뜰 사는 게 쉽지 않아졌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사회로 접어들면서 받아들여야할 현실인 것이죠. 최근 은행권에서 터지는 파생상품 손실 사태는, 이런 변화의 한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