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4500만명은 왜 굶어 죽어야 했나
세상의 거의 모든 CEO들은 자기 조직의 혁신을 꿈 꿉니다. 자지가 그 곳 수장을 맡으면서 큰 변화와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CEO나 리더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들의 혁신 시도가 대부분 범타에 머문다는 점이에요. 그만큼 조직의 변화 혹은 성장은 힘든 것입니다. 외부는 물론 조직 구성원들에게조차 '잘했다' 평가를 받기 힘든 것이죠. 기존에 있었던 체계를 더 망쳐 놓지 않으면 오히려 위안일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 가장 겁나는 팀장 혹은 리더는 누구인지 아시나요? 무식한데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무식이란 단어는 단지 머리가 텅텅 비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고찰, 문제에 대한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것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무식한 리더가 고집까지 갖게 된다는 말이 되겠네요.
여기에 최악은 그 주변 사람들이 리더의 눈치만 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상황입니다. 그 사람의 심기만 살피면서 듣기 좋은 말만 번지르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멸절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그런 조직이나 집단의 특징 중 하나는 잘 되면 '나의 영도력', 안 되면 '무능한 부하들의 탓'으로 돌립니다. 성과가 안 나오면 어떻게해서든 내부 사람들을 짜내어 내려고 하죠. 투자도 없는데 무슨 성과가 나오겠습니까.
여기에 외부 경쟁심까지 강하다면 조직은 더 큰 파멸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 그 피해는 실무자들이 다 받게 되는 것이죠. 역사상 이런 일은 무지막지하게 많습니다.
이런 사례의 하나로 중국의 대약진 운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58년부터 모택동이라고 하죠 마오쩌둥이 내린 인민 총동원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촌 국가인 중국을 공업국가로 변모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을 앞서는 것이죠.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 총동원령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어요. 전시상황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그런데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국민들을 동원하고 그전 상황을 뒤바꾸려는 시도는 북한이나 쿠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 되겠죠.
이런 운동은 밑의 사람들에게 '까라면 까'라는 식의 명령 하달 체계를 밑바탕으로 깔고 갑니다. 그런데 '까려고 했는데 까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목표외 계획을 수정해야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이럴 때 수치적인 조작이 일어나게 됩니다.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체계가 강한 국가의 통계 수치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장의 노하우와 운영의 효율성을 무시한 리더의 지시체계, 그 리더의 지시를 성경 구절이라도 되는양 받아 적기만 하는 중간 관리자, 그들의 결정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그 오류적 체계가 수많은 인민을 굶겼고 죽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마오의 대기근'이라는 책에서 상당 부분 발췌해왔어요. 저자는 프랑크 디쿼터라는 사람이고 출판사는 열린책들입니다. 마오쩌둥이 추진한 대약진운동(1958~1962년) 간에 벌어진 병맛같은 일들을 약간은 블랙코미디처럼 썼습니다.
먼저 마오쩌둥이 남긴 어록 중 충격적인 것 하나 말씀 드려볼게요.
'인민 절반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나머지 절반은 굶어죽게 둬야 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인명경시 풍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소련은 물론 북한, 폴 포트의 크메르루즈가 한다던 사회주의 혁명이란 허울좋은 소리에 이런 인명경시는 항시 담겨 있어요.
실제 대약진운동으로 4500만명의 중국인이 아사 혹은 국가적인 폭력으로 사망합니다. 1958년 당시 중국의 인구가 7억명을 좀 넘겼다고 하는데 인구의 5% 가량이 국가의 실책으로 사망한 겁니다. 그것도 많은 수가 굶어 죽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때는 1953년으로 먼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해는 한국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해이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죽었던 해입니다. 마오 입장에서는 골칫거리 두가지가 다 해결되는 해방같은 해였습니다.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스탈린은 사실 마오에 대해서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장제스를 더 우호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마오에게는 약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오가 중국의 지배자로 나서게 된 것은 1949년부터였어요. 그전까지는 마오가 절대적으로 불리했습니다. 스탈린이 한창 부상하던 1930년대나 1940년대는 장제스가 중국 대륙의 지배자였습니다. 마오는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국공내전이 마오의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스탈린의 태도는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가진 카리스마가 장난아니었기에 마오도 꾹꾹 참고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정말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자수성가형 리더로 자부심이 가득 찼었지만요.
스탈린 사후 후루시초프가 소련을 이끌게 됩니다. 마오 입장에서 봤을 때 후루시초프는 '해 볼만한 인물'이었어요. 소련과 중국 중 어느 누구가 진정한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건설할지 경쟁을 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즈음 한 사건 하나 터집니다.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죠. 서구 과학자들이 우주에서 오는 지지직 신호를 청취했는데, 그게 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아연질색했죠.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우주강국 미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집니다.
왜냐, 소련이란 나라는 불과 40년도 안되는 나라였어요. 비록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수천만 인민과 군인을 인해전술식으로 갈아넣어 거둔 승리거든요. 그리고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는 유럽에서도 산업화 속도가 후진적이었고, 사실상 농촌국가였고요. 변변한 과학자도 없던 농촌국가가 40년만에 변모해 미국을 앞선 것이죠.
이로인해 소련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우주를 찌릅니다. 후루시초프는 15년 내에 육류와 우유, 버터 생산량에서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었죠. 인공위성이나 우주경쟁만 놓고 봤을 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소련은 원폭도 있었죠. 군사, 무기 면에서 당시 미국과 호각세를 이룬 것처럼 보였습니다. 불과 40년만에. 물론 독일과의 전쟁 과정에서 쌓게 된 기계공학, 로켓기술 등이 큰 도움이 된 것이지만 말이지요.
여기에 질 수 없는 게 마오쩌둥이었습니다. '소련이 하는데 우리가 못해'라면서 소련을 벤치마킹합니다. '우리는 영국을 따라잡겠다'고 한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만만한 나라가 됐다고는 하지만 영국은 그때도 산업강국이었어요.
공업화의 한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철강 생산량에서 영국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합니다. 이쯤되면 놀이터 아이들이 '우리 집이 더 넓다~ 우리 차가 더 비싸다~' 자랑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죠.
죽어나는 것은 중국의 인민들입니다. 1957년 중국의 강철 생산량은 520만톤입니다. 제조업 기반이라고 할 만한게 부족했죠. 사실상 농촌국가여나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마오쩌둥은 5년내 2000만톤을 생산하고 또 5년뒤 3000만톤에서 4000만톤을 생산하면 영국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소련도 우주기술로 미국을 앞서는데, 철강 생산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있었을 꺼에요.
죽어나는 것은 이제 인민들입니다. 이런 사회주의 국가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리더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면, 그것을 맞추기 위해 인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그 사람들을 거의 갈아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죠.
마오쩌둥은 중국에 오자마자 당장 계획을 시작합니다. 그 계획은 간단합니다.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밑에 하달합니다. 그 방법은 밑에서 알아서 찾아야 합니다.
마오가 한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것이죠.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하는 것입니다. 1959년말까지 베이징에서만 중앙위원회 위원 수준에서 300명 가까운 인사가 숙청됐습니다. 최상층부의 10% 정도가 숙청됐고 그 숫자가 수천명에 달합니다. 1959년에서 1960년 사이 360만명의 당원이 우파로 낙인 찍히거나 숙청됩니다.
이런 서슬퍼런 분위기에서 감히 당 지도자가 세운 목표치에 반대 목소리를 낼 사람들은 없다시피하게 된 것이죠.
영국을 추월하기 위해 철강 목표치를 하달합니다. 1958년 철강 생산 목표치는 620만톤입니다. 전년도 철강 생산량이 520만톤이니, 딱 100만톤 올린거네요. 그렇다고 해도 20% 이상 증산을 해야합니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해야하잖아요. 그리고 원자재를 더 많이 들여와야 하고.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그런데 어느 나라를 봐도 한 해 동안에 20% 이상 철강 생산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대단위 철강 생산라인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리더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소련을 빨리 추월하고 그동안 무너져있던 위신을 세우고 싶은 것이죠. 게다가 이미 소련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 큰소리를 뻥뻥 친 것도 있어요.
이럴 때는 어떻게? 예, 계획 목표치를 올리면 됩니다. 수단과 방법은 밑의 사람들이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전형적인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자의 사고방식이죠.
그해 2월 620만톤이었던 철강 생산 목표치는 5월이 돼 850만톤으로 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애' 그러면서 한달만에 목표치를 1070만톤으로 올립니다. 그제서야 좀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연말에 그 목표치를 채워 넣었다는 점이에요. 대규모 제철소 건립 없이도 말이죠. 참 신기한 일이죠.
비법은 각 농촌에서 만든 '토법고로'입니다. 이게 흙으로 만든 용광로 비슷한 건데, 겉모습이 첨성대 비슷합니다. 흙으로 쌓은 고로에 쇠를 넣고 밑에서는 나무 등 땔감을 넣어 쇠를 녹이는 것이죠. 중국 전역에 50만기 정도 되는 토법고로를 만듭니다.
이 고로에 넣을 쇠를 녹이기 위해 각종 고철이 동원됩니다. 농촌에 만들어진 고로이니 당연히 농민들이 와서 쇠도 넣고 땔감도 넣고 하면서 철강을 만드는 것이죠. 그 사람들이 무려 4000만명이 됩니다.
철강 생산의 목적은 공장이나 농장에 쓰이는 기계, 기구를 만드는 것인데, 철강 생산 할당을 맞추기 위해 멀쩡한 농기구와 기계를 부셔서 녹이기 시작한 거였죠. 그런데 어찌어찌해 첫 해는 목표량을 맞췄다는 보고를 받아요.
마오는 만족합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야, 뭣하러 대형 제철소를 만드냐,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사실 마오는 중국 사회의 근간이 농촌이란 점에 주목했어요. 소련은 농촌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면서 모든 역량을 공업도시에 집중했다면, 마오는 농촌에서 제조업 부흥이 일어나고 스스로 성장하기를 기대했던 것이죠. 취지야 어떻게 됐던 농민들은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철 녹이기에 나섭니다.
철을 녹인다는 건 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화력이 있어야 하죠. 그리고 사람들이 그 화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 화력은 어떻게 동원할까요? 바로 나무죠. 중국 전역의 산들은 곧 민둥산이 됩니다.
바쁜 농사철에 고로에 동원돼 와서 일을 해야하니까 정작 그들의 본업인 농사일은 제대로 할 수가 없죠. 식량 생산이 제대로 될리가 없죠.
그렇게 해서 나온 철강을 수출까지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품질입니다. 불순물이 너무 많고, 이것저것 다 쑤셔넣어서 그냥 고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고철 쓰레기 1000만톤을 만들다가 중국 산들은 민둥산이 됐고 중국의 논과 밭은 황폐화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국의 리더들은 치수 사업을 사회 변혁 작업의 최우선으로 삼았어요. 중국의 이상사회로 추앙받는 요순시대도 그 시작은 치수에 있었습니다. 식량 증산에 있어 홍수와 가뭄의 조절은 필수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각 농촌마다 댐과 저수지를 만드는 사업을 합니다. 그 일은 누가 하죠? 당연히 농민들이 나와서 하는 것이죠. 중국 농민들은 참 바빴을 것 같아요. 쇠 녹여야 하지, 또 나와서 저수지 축조해야하지.
여기에 각 지방정부별로 경쟁이 붙습니다. 그런데 그 경쟁의 기준이 뭐일까요. 저수지나 댐은, 철강과 달리 수치적으로 측정할 만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 나온 게 얼마나 댐과 저수지를 만들 때 사용한 흙의 톤 수 입니다. 댐과 저수지를 견고하고 튼튼하게 그리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것보다 얼마나 많은 흙을 퍼와서 실어 나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됩니다.
식량증산을 위해 여러가지 정책이 펼쳐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비료주기 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보통의 나라에서는 농업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비료 공장을 기본적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그 대신 사람들의 인분을 동원합니다. 분뇨를 얼마나 모아서 목표치를 맞추는지가 큰 과제가 됐어요. 이를 지키지 못한 일부 여성들은 머리카락까지 잘라야 했다고 합니다. 머리카락도 유기물이니까요.
여기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방법중 하나가 진흙과 볏짚을 밭에 갈아 넣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있을까요. 예, 시골에 널려 있는 게 또 초가집이잖아요.
처음에는 오래된 축사를 허물어서 거기서 나온 볏짚과 흙벽을 씁니다. 오래된 축사는 동물의 분변이 오래도록 축적돼 양분으로서의 역할을 잘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것마저 부족해지니까,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을 허물기 시작합니다. 가옥 수천채가 철거됐고. 그 집의 자재들은 밭에 뿌려집니다.
이외에도 땅을 깊이 갈면 비옥해진다, 모를 빽빽하게 심어 쌀 생산량을 늘리자, 나락을 먹는 참새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는 등 여러 일을 합니다.
신기하게 수치는 항상 오버돼 달성했습니다. 중국 전역에 걸쳐서 면화, 쌀, 밀, 콩 등의 생산량이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남는 곡물을 갖고 어떻게 해야할까 행복한 고민에까지 빠집니다.
그런데 현실은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철강 생산량도 크게 늘었고 식량 증산도 잘 되고 있는데 1958년 2월부터 굶주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왔고, 집을 잃고 헤메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난 것입니다.
애써 만든 철강 제품은 잘 부서지거나 부러지기 일쑤인데, 홍수와 가뭄은 이상하게 더 심각해진 것 같고. 결국 1962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마오 주석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보면 우습죠?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조직 내부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있다면, 그 매출이 줄고 있는 원인을 파악해야겠죠. 그 원인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 저하일 수 있고 마케팅이 문제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강력한 경쟁자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가장 쉬운 일은 벽에다가 실적 고과 표를 붙입니다. 공개적으로 이를 보이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실적 과장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혹은 CEO의 몰이해적인 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있을 수 있죠. 그 사람에 대해서 ‘조직에 반하는 친구’라고 해서 쫓아낸다거나 배제시키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CEO를 비롯한 리더들의 착각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시키면 다 되는 줄 아는 착각이죠. 야 이리로 와봐 김 대리. 옆 회사에서는 회사 홍보를 위해서 유튜브까지 하더군. 왜 우리는 못하는 것이지? 아주 실망이 커. 그런데 그 리더 혹은 팀장 혹은 사장은 김대리가 유튜브를 할 수 있는 혹은 회사의 마케팅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줬을까요? 그리고 옆 회사의 그 친구가 유튜브까지 하면서 회사 홍보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또 무엇일까요?
70년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미 우리는 그때 그 일을 이미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윗사람을 보면 ‘한숨만 난다’ 하시는 분들, 당신이겠죠.
참고서적 : '마오의 대기근'(열린책들), 프랑크 디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