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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Apr 23. 2022

무식한 게 정답일 때도 있다

신입홍보직원들과의 대화-2

그들의 눈빛에서는 실망한 빛이 역력하게 보였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메일 보낼 때 제목을 어떻게 쓰고, 어떤 시간대에 보내야할지 등을 얘기 하기 전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릴까 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나고 느꼈던 얘기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지금 그의 소식을 듣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어디에선가 또 자기만의 일을 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매번 '해야돼, 말아야돼'라면서 뭔가 할 때 망설일 때, 수많은 취재 요청이 번번이 거절로 끝날 때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3년전 요맘때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제가 일전에 보낸 메일에서 보충하거나 개선해야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뭐지?' 생각해보니, 그 메일을 받기 며칠전 읽었던 메일 하나가 생각났다. 숙박중개 스타트업이었는데, 이름도 생소했고 보낸 이의 이름도 낯설었다. 하루에도 수십개, 수백개 오는 보도자료 메일이려니 하고 그냥 읽고 말았다.


그런데 또 왔다. 직접 자기의 개선사항을 알려달라는 메일을 받아보기 처음이었다. 약간의 오지랍이 발동해, 보도자료 구성과 메일에 써야하는 인삿말 등의 요령을 간단히 일러줬다.


며칠 뒤 또 메일이 왔다. 이번엔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기자 미팅. 대체로 만나자는 사람들을 다 거절없이 만나려고 하지만, 주고 받은 메일이 이미 있었던지라 만나기로 했다. 그냥 '내 남는 시간을 내어준다'라는 생각.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었고, IT나 포털 등과 관련된 기사를 발굴해야했던 터라, 신생 스타트업과의 만남은 '미래를 위한 투자' 정도였다.


미팅 날짜를 정하고 서울 강남 어디에선가 만나게 됐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 회사 기사 하나 써줘야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기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떤 과정을 지내왔는지 후일담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서비스 출시를 하고, 알려야 하는데, 해당 스타트업은 자금 상황이 넉넉치 못했다. 여기서 자금 상황은 홍보대행사를 쓸만한 돈이다. 모든 일을 창업자와 그의 팀원이 직접 해야 했다.


이 즈음에서 보통의 창업자나 팀원은 어떤 전략을 쓸까. 유튜브 채널을 만들자,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성화시키자 다양한 의견이 오갈 것이다. 그러다가 각종 '안될 이유'가 나오면서 다시금 제자리로 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노가다'가 아닐까. 실행력이다.


이 친구는 기자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서 관련 IT 기자들의 이메일 리스트를 모았다. 기사 검색을 통해서 모았고, 또 일부는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기자 메일 리스트가 600개 정도 된다고 했다. 그 600개의 주소에다가 보도자료를 보냈다. 이름도 모르는 무명의 창업자가 보내는 그 메일을 어떤 기자가 쉬이 열어볼까.


더군다나 내용이나 구성도 조악할 수 밖에 없다.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실제 이는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600개의 메일 주소 중 200개는 반송됐다. 아는 지인이 보낸 메일 주소 상당수가 오류였거나, 이직 등으로 옛날 주소가 됐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머지 300개는 읽지도 않았다. 그나마 읽었다고 수신확인이 뜬 게 80여개. 그리고 이 중 기사로까지 나온 것은 한 개도 없었다. 기자미팅을 잡은 것은 제로였다.


보통은 이 정도 선에서 끝난다. 아마 '성과는 없었지만 열심히 했다' 정도의 평가를 받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보통의 수순일 것이다. 아니면 홍보대행사 싼 곳을 찾던가.


그런데 이 친구는 그 80여개 메일 주소에 하나하나 다시 보냈다. 자신이 앞서 보냈던 보도자료 메일 중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면 개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부분은 또 이것도 지나쳤지만, 개중에는 답메일을 통해 '개선사항'을 알려준 오지라퍼가 있었다. 그중의 한명이 나였다.


이렇게 온 메일을 보고, 그중에서도 온정적으로 보이는 기자들에게 연락을 해 기자 미팅을 잡았다. 4명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중 한명이 인터뷰를 해주기로 했다.(그게 나였다)


사진 : 픽사베이 


이후로 이 기업은 탄력을 받았는지 곧잘 보도자료가 기사화돼 나오곤 했다. 그전처럼 520번의 거절을 받지 않고도 손쉽게 보도자료를 송달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거절 뒤에 작은 성공이 발판이 된 덕분일 것이다.


가만히 보면 모든 시도는 '밑져야 본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설령 그게 수많은 거절과 실패를 전제한다고 해도.


물론 태평양전쟁때 일본군이 했던 '반자이 돌격'과 같은 무모한 시도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도에는 성과가 전제돼야 한다. 자명한 얘기다.


다만 우리 일상을 보면 의외로 '하지 않아서, 시도조차 안해서' 안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다들 '안될꺼야'라고 하는 일은 실제 그들의 '말대로 안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해결점이 분명 보이는데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귀찮음'으로 외면할 때가 있다.


그런데 개중의 하나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느끼는 성취감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거절에 대한 실망감은 늘 크다. 그걸 피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포기하면 쉬워'라는 말이 괜시리 나온 말은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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