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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Apr 24. 2022

기본도 해봐야 쌓인다고…

  신입홍보직원들과의 대화-3 

"해봤어?" 


한국 근현대사를 통 틀어 경제 거목으로 통하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직원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다. 다 각자 어려운 이유가 있지만, 그것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뜻일 수 있다. 



그날 (외국계 홍보대행사) 회의실에 앉아 있는 그들, 신입사원 내지 적어도 2~3년 차 정도 되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안 될 이유를 말하기는 쉬워도 한 번 해보기는 어렵지 않던가. 그 실행을 했던 사람이 바로 내가 언급했던 그 스타트업 청년 창업자였다. 


그는 600여 기자들에게 거절을 당했다. 그의 보도자료를 보고 단 한 사람도 기사로 써주지 않았으니까. 보통은 거기까지인 듯하다. 해 볼만큼 했으니까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안이 그에게 최선의 대안일까. 돈 없고 지명도도 없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회의실에 앉아 있는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외국계라고는 하지만 홍보대행사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현실적 난관에 부딪힌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고 싶었다. 수화기 속 기자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도, 단 한 건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한 번 더 시도해보고 뭔가 미진한 부분은 없나 찾아보라고 하고 싶었다. 


이런 의도가 전달됐는지 회의실 내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거절과 무시'라는 상대편 진지에서 날아오는 탄환을 피해 가며 적진에 파고들어야 하는 구르카 용병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구르카 용병은 전 세계적으로 용병으로 명성이 높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용맹을 떨쳤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무모하리만큼 용맹했다. 일본군의 진지에 몰래 들어가 맹위를 떨치곤 했다.) 


이쯤 되면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 당신들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얘기했으니... 




"여러분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게 기자들의 근무 패턴이에요. 특히 여러분들의 보도자료가 읽힐 수 있는 시간이 오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셔야 해요." 


무턱대고 보도자료 메일을 보내고 '기사가 안돼요'라면서 징징거리지 말란 뜻이다. 그들의 근무 패턴, 사람 됨됨이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방송기자냐, 석간신문기자냐, 인터넷 전문지 기자냐에 따라 너무 판이하게 달라져서, 어떤 특정한 것으로 정형화하기는 힘들다. 같은 매체라고 해도 출입처별로 근무 형태는 판이하게 다르다.  


상당히 개인적인 사례가 될 수 있지만 경제지 기자의 아침 시간을 설명했다. 이런 식이다. 아침 출근을 하면 그날 어떤 기사를 쓸지 발제를 한다. 데스크나 팀장이 보기에 괜찮다 싶으면 그 기사는 채택이 된다. 협의에 따라 당일 혹은 그다음 날에 출고가 된다. 마감 시간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여기서 갈리는 게 기업들을 출입처로 두고 있는 기자들과 그렇지 않은 기자들이다. 삼성전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기업들을 출입처로 두고 있는 기자들은 발제 후 시간에 보도자료를 처리한다. '어떻게 기업들이 낸 자료를 그냥 기사로 내냐, 이거 광고 아니냐'라면 기자나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 할 말은 없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니까. 


다만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IT 포털에서 네이버 등과 같은 중심 기업들은 그들이 뭘 개발하고 어떤 제품을 내놓는지 등이 다 뉴스가 된다. 투자자나 구매자들에게 있어 뉴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스에도 경중이 있듯이, 이들 기업들이 자료로 내는 것은 상당수가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자료' 기사들이다. 


이는 관공서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마찬가지. 각 정부부처나 지자체에서도 보도자료를 내놓는다. 기획재정부 같은 곳에서 내는 자료는 우리나라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위 말해 '받아쓰기'를 한다고 해도 그 자료는 그 자체만으로 뉴스가 된다. 


물론 조선일보 등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에 입각해 '뒤집어써 볼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누가? 팀장이나 데스크가. 같은 자료라도 허점 혹은 부작용 등을 취재해서 쓰는 것이다. 


이들 중요 출입처의 보도자료를 처리하고 나면 각자 취재 활동에 들어간다. 그날 마감을 위해서다. 경제지, 특히 IT파트를 맡고 있거나 IT전문지 같은 경우에는 좀 덜 알려진 업체의 보도자료를 처리하기도 한다. 출입처 관리 차원일 수도 있고, 그들에게도 '알려질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단지 이 이유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의 보도자료를 성심성의껏 써 주는 기자도 봤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홍보해야 하는 대행사 직원, 혹은 스타트업 홍보마케팅 담당자는 그 시간을 활용하는 기자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남는 시간에 호혜적으로 보도자료를 처리해주는 이들이다. 그들 기자들의 의도가 어찌 됐든 간에 포털 뉴스 등을 통해 알려질 수 있는 기회다. 


기자 입장에서 남는 시간에 잠깐 처리해주려고 하는데, 수 십 개에서 수백 개의 보도자료 메일이 들어왔다고 치자. 이 중 하나를 골라서 기사로 쓰려면 보통은 리라이팅 작업을 한다. 거친 표현을 줄이고, 지나친 광고성 문구를 배제한다.  (물론 그냥 카피 앤 페이스트로 내는 기자도 있다.) 


대기업들, 특히 매체들을 대상으로 기사를 내본 경험이 많은 홍보실은 이런 부분에 있어 탁월하다. 그냥 내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잘 정리돼 있다는 뜻이다. 기자 입장에서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아껴주니 말이다. 


문제는 작은 기업 홍보팀이나 대행사에서 낸 자료다. 아쉽게도 국내 홍보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대행사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그들의 보도자료 질도 떨어지는 인상을 받고 있다. 대형 홍보대행사들은 경우가 다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행사에서 낸 자료들을 보면 그냥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고치는 품이 더 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아예 제친다. 


전편에서 언급했던 그 스타트업 창업자의 보도자료 메일도 이 같은 경우에 속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기사문과 판이하게 다른 문체였다. 문장 속 단어도 생소하거나 어색한 게 많았다. 업계 내 자기들끼리 읽기는 쉬워도 포털을 볼 일반 독자에게는 쉽기 이해가 안 되는 단어들이다. 


그래서 이 말을 꼭 당부하고 싶었다. 


"여러분들, 숫제 말로 아예 가져다 붙여도 써도 될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어야 해요. 가뜩이나 시간이 없는데, 중요 출입처 자료 쓰고 내 취재 기사 쓰기 바쁜데, 이름도 잘 알려진 여러분들의 클라이언트의 보도자료를 일일이 고쳐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보도자료를 읽어볼 기자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보였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일까. 영상과 이미지를 중요시하고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세대가 대행사나 홍보팀 내 젊은 직원으로 합류하다 보니, 그들이 쓰는 글도 영향을 받는 듯하다.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패션잡지의 평론가처럼, 또 다른 이는 수필처럼, 또 다른 이는 영상 언어를 그대로 써서 올리곤 한다. 어떤 이는 중요한 핵심 내용을 뒷부분에 놓는다. 


대기업처럼 어느 정도 홍보 체계가 갖춰진 조직이라면 이들 글은 중간에서 커트된다. 아마 상사로부터 '교육의 시간'을 받으리라. 대형 홍보대행사도 마찬가지일 테고. 


이런 상사가 없는 작은 조직은 본인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쓴 글에 정답이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문학이나 평론은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기사문은 정형화된 체계로 된 글입니다. 최대한 두괄식으로 쓰면서 문장은 단문으로 쓰는 게 기본이죠. 맞춤법은 또 기본 중의 기본이고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의 글을 읽고 연구하고 때로는 필사를 해보면서 늘려가는 게 중요해요." 


이 말은 마치 이런 식이다. '어떻게 공부했냐'라고 물으니 '교과서 보면서 공부했고 교과 과정에 충실했다'는 식의 답변. 사실 이런 답변이 정답일 수 있다. 공부에 있어 결정적인 성패는 방식보다 꾸준함이 아니던가. 자기 약점을 보충할 수 있는 전략적인 지혜가 있으면 금상첨화인 것이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실행'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해봤어?'라는 말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무엇인가의 정답을 원하고 나를 불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도자료의 기사화 확률을 높일 수 있는지... 그러나 그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나도 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거기에서 나온 문제점과 보완점을 수정해가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결국 보도자료가 기사로 나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도자료를 깔끔하게 잘 써야 한다라는 귀결. 깔끔하게 잘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개선이 필요하고 실행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뜻. 


초년생 시절 '일 못한다'라고 욕을 먹던 시절 한 선배가 해줬던 얘기를 끝으로 들려줬다. 지금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완벽하지 못할 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얘기. 뭘 써도 욕을 먹는 시기라서 발제조차 두려워했던 시기였다. 


“완벽한 기사는 없다.” 


완벽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선해라. 우리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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