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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Apr 30. 2022

하찮은 사람은 없다

신입홍보직원들과의 대화-4

픽사베이 


회의실 뒷편에 있던 한 직원이 손을 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내 얘기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질문을 했다. 


"혹시 친하거나 아는 사람이 보낸 보도자료라면 기사로 실어주나요?" 

"예,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죠. 저만해도 이왕이면 아는 사람 면 세워준다는 생각으로 임할 때가 있어요." 

"그러려면 해당 기자와 친밀해야겠네요." 

"이메일보다는 문자가, 문자보다는 전화 한 통이,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고 먹고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더 친밀해지는 것이겠죠." 

"역시, 직접 만나고 얘기하는 게 중요하군요." 

"그런데, 이것 하나는 아셔야해요. 오래 만나온 관계일 수록 친밀하다는 것이죠. IT업계에 유명한 기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분과의 친밀도는 아무래도 여기 계신 사장님이 더 높겠죠. 그동안 만나왔던 시간이 기니까." 

"아, 어떻게 노력을 해야할까요." 


대화가 이 정도까지 왔을 때,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꺼냈다. 이른바 고연차 기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란 홍보대행사 신입 직원이나 홍보실 막내들에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말라. 


"지금 만나는 기자나 미팅이 약속된 기자가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분과의 만남을 잘 이어놓아 보세요. 인성 등에서 괜찮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싶으면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요.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그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애쓰려고 하지는 마세요. 좋은 인상을 남겨 놓는다는 생각 정도만 합시다." 


질문을 했던 그는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친하게 지내려고 하면서 너무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라니. 그 친구 입장에서는 헷갈릴 수 밖에. 


"사람의 관계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시간을 갖고 숙성되는 것 같다라고 봐요. 오래 담근 장이 깊은 맛을 우려내듯이요. 지금 당장 도움이 안된다, 혹은 너무 연차가 어려보인다 싶어도, 그 사람을 만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기자와 홍보인의 만남은 일과 일의 만남이다. 그들이 아무리 친밀하게 사귀고 친분을 나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는 유지될 수 밖에 없다. 예외적으로 기업의 내밀한 부분을 알려주는 홍보인도 있지만, 그건 정말 흔한 일이 아니다. 


기자는 기사를 쓸 수 밖에 없고, 그 와중에 홍보인은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인간적인 교분을 맺고 있었다면 거기서 느껴질 배신감은 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홍보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다음 번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을 정도의 관계를 터 놓으라는 뜻이다. 


"여러분, 그리고 하나 생각해보셔야할 부분이 있어요. 본인들이 보기에 마이너매체 혹은 잘 모르는 매체의 기자라고 해도, 잘 대해주세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다른 매체에 인정을 받고 더 나은 매체로 옮겨가곤 합니다. 그때 그 모습은 초라할지 몰라도 이후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실제로도 여럿 봤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매체에 저연차 기자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성실하게 질문하고 기사를 쓰면서 더 나은 매체로 옮겨가는 상황 말이다. 물론 매체력이 약하다고 여럿 서러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때에 잘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를 가격으로 맺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저가매수' 한 셈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비단 기자와 홍보인 관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 혹은 사회 생활에 있어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된다는 것은, 미래에 가보지 않은 이상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하찮은 일을 한다거나 혹은 젊고 어리다고 해서 그 사람의 미래 모습까지 저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함부로 평가하거나 낮춰보는 일은 실수라고 해도 피해야할 일이다. 


나이 어린 홍보직원들에게 훈계 아닌 훈계까지 하는 꼴이 됐다. 민망하게시리. 그들이 어떤 도움을 받았을지 모른다. 큰 도움은 안됐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 본인들이 잘 알고 있는 정답을 한 번 더 되풀이해줘서 나눠봤을 뿐이라서 그렇다. 


기본을 다지고 꾸준하게 하면서 누군가를 대할 때 성실하게 임한다면, 그리고 그 기간이 몇년이고 축적이 된다면, 굳이 홍보인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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