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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Apr 22. 2022

기자와 홍보인 간 욕망의 곡선

신입홍보직원들과의 대화 -1 

외국계 기업을 많이 홍보하는 한 대행사의 사무실. 때는 2018년 4월 어느 날. 장소는 그 대행사 내 회의실. 대리·사원급 직원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모여 앉아 있었다. 


일단 그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간단했다. 그들이 낸 보도자료를 어떻게 하면 기자들에게 잘 소개하고 기사화되는지 여부였다. 



"기자님,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 출발부터 좀 달리봐야할 것 같아요. 기자들도 쓸 만한 자료가 있으면 당연히 기사를 씁니다. 이 현실을 알아야해요. 주목을 끌 만한 자료라면 굳이 어떤 미사여구를 넣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뭘까요?" 


"제 이메일을 한 번 열어서 보여드릴게요." 


이메일 계정을 입력하고 비번을 넣은 다음에 회사 계정으로 오는 메일 주소를 열어줬다. 내 계정에는 수십통, 수백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이중 상당수는 열어보지 않은 채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놀란 것은, 열람조차 하지 않는 메일이 수십통이라는 점이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이거 보세요, 여러분들. 기자들, 자기가 발제한 것 쓰기도 바쁘고 취재하기도 바쁩니다. 매체에 따라, 출입처에 따라, 기자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각자 고유의 취재 아이템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자들은 보도자료는 언제 쓰나요?" 


"이건 매체마다 달라서 뭐라 규정짓기가 어려워요. 저희처럼 온라인도 겸하는 매체라면 남는 시간에 보도자료를 처리하곤 하죠. 경제매체나 인터넷온라인 전문매체들이 그렇겠죠." 


"그렇다면 어떻게서든 눈에 띄게 제목을 달아야 할까요?" 


"미안한데, 그 가정은 일부 맞을 수 있지만, 일부는 또 아닐 것 같아요. 기자들이 어떤 기사, 어떤 자료에 관심을 보이는지 알아야죠." 


나는 사진 한 장을 프로젝터 화면에 띄웠다. 전날 비뚤빼뚤하게 만든 그래프였다. 논리적으로 여러번 설명하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효과가 날 때가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과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에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쓰는 공급과 수요 곡선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것이 현실과 안 맞는다고 해서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가정은 이랬다. '이슈가 있으면 기사가 된다.' 여기에 기자들의 욕망 곡선과 홍보인의 욕망 곡선을 그었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이 결정되듯, 기자들의 욕망 곡선과 홍보인 혹은 기사화가 원하는 인물의 욕망 곡선이 만나는 구간에서 기사화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기자들의 욕망 곡선은 만들기 쉬웠다. 이슈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사화에 대한 수요는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기자가 기사를 만드는 시간(수요 곡선에서는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슈성이 높은 것을 기사로 만들려고 한다. 


이슈성, 즉 주목도가 낮은 것에 대한 기사화는, 들인 시간과 비교해 효용이 낮기 때문에 기사화를 하고 싶은 욕망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이슈성이 낮다는 얘기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뜻으로 변용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나 한국에 막 진출한 외국기업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만든 표. 혹 퍼가신다면 출처를 분명히 밝혀 주세요 


반면 홍보를 원하는 기업 혹은 기사화 정도에 대한 욕망곡선은 반비례로 움직인다고 가정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 즉 이슈성이 낮은 기업일 수록 기사화에 대한 욕망은 클 수 밖에 없다. 


반면 이슈성이 클 수 밖에 없는 기업, 예를 들면 네이버나 SK텔레콤처럼 소비자 생활에 밀접한 기업이나 삼성전자처럼 투자자가 많은 기업들은, 이슈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낮은 것으로 고려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기자들의 기사화 열망이 높기 때문에, 굳이 기사화나 이슈화에 대한 욕망 정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이 곡선의 만남 접점에 가까워질 수록, 기사는 더 충실해진다고 볼 수 있다. 홍보인들 혹은 이슈메이커의 협조(욕망)과 기사를 만들고 싶은 기자들의 욕망이 적절히 균형점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홍보 혹은 기업들이 원하는 열망 곡선은 매체에 따라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정치인이라면 조선일보, 기업인이라면 한국경제와 같은 매체, 연예인이라면 TV방송사 등이다. 


사진을 보여주니까 그곳 직원들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론적이고 가정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 


이 그림의 분포에 따라 기자들과 홍보인들이 들여야 하는 투자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이슈성은 높은데 당사자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 구간이라면 어떨까. IT업계라면 김택진, 이해진, 김범수 등이다. 이들은 좀처럼 매체에 노출을 꺼리는 이들이다. 그런데 대중적인 관심, 특히 IT기자들의 관심이 높다. 당연히 이 구간에서 기자들 간 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없는 것도 찾아내서 추측성으로 써야하는 구간이 이 곳이다. 


인지도는 낮은데 기사화에 대한 수요가 높은 곳은 어딜까. 갑작스럽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회자되는 기업들이 아닐까. 가까이로는 머지포인트 같은 회사다. 이 회사는 머지포인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회사'였다. 


그 반대 하단은 미담이나 상 받은 것 정도가 아닐까. 그냥 무풍지대라고 했다.


그래프까지 보여주자 직원들은 일순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클라이언트, 즉 고객사들이 아무래도 ‘홍보인들이 빡센 구간’에 놓인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고 하지만, 그런데 이 그래프를 보면 힘들어 보이기만 한다. 


따지고 보면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전문가'라는 본인들이 나서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고객사로 끌어들인 게 아닌가. 


스타트업 홍보·마케팅 담당자라면 그 난관을 해쳐나가는 게 본인의 일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멘땅에 헤딩하기가 어디 한둘인가. 홍보도 그 중 하나의 업무일 수 밖에 없다. (멘땅헤딩력이라도 없다면 스타트업의 존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어떻게 하면 될까? 한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홍보 예산이 없는 무명의 스타트업이 어떻게 본인의 인터뷰까지 땄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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