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년 지방 라디오 방송사 전화 출연을 했던가...
지난 2016년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다. 당시 대구KBS라디오에 월요일 아침마다 경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길면 8분, 짧으면 5분 정도 끝나는 전화 연결이었다. 미리 원고를 보내고, 그것을 그대로 읽는 수준이라 어려운 것은 없었다. 물론 방송이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쉬울지 몰라도, 방송 초짜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런데도 꾸역꾸역 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팟캐스트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바로 이 라디오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 2014년부터 2018년말까지 약 4년간 했다.
가끔 무턱대고 선택할 때가 있다. 잘 할 수 있을지, 아니면 못 할지 따져보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다.
2년 전, 경상북도 지역에만 나오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키로 결정했던 것도 이것 저것 따져보지 않은 선택이었다. 같은 회사 동료 후배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돼 대신 맡게 됐다. 사실 그 후배가 날 적임자로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다.
예의상 물어본 건데 덜컥 '예스'를 해 버린 것. 그 후배 마음 속에 '적임자'는 따로 있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방송 작가에 소개할 수 밖에 없었다.
대구·경북 지역에만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한 번 7~8분 정도 분량이었지만, 생방송이었다. 전화로 연결돼 주어진 대본을 줄줄 읽는다고 해도 '짤' 없는 생방이다. 1~2초 침묵이 제작진의 피를 말리게 하는.
생방송도 문제지만 방송에 대한 경험이 (본인은) 전혀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후배가 작가에게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고 초를 쳤지만 전문용어로 '구라'였다. 소위 말해 '약을 쳐준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컴플렉스는 목소리였다. 가늘고 톤이 높으면서 엷은 목소리. 발음도 부정확한 편이다. 사춘기적 얼굴 근육 발달이 불완전했는지 '옹알옹알' 불안정할 때가 많았다.
연애 때 그토록 와이파이님의 속을 태웠던 이유중 하나도 목소리였다. 남자란 인간이 자주 전화를 걸고 수작도 피우고 해야하는데, 그런 게 별로 없어서였다. 음성 음역대중 고역대와 저역대가 잘리고 나오는 그 목소리가 싫었다.
목소리라는 컴플렉스에 갇혀 여자한테 자신있게 전화조차 못했던, 그랬던 '쫄보'였다. '10년솔로' 장고의 시간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뜻하지 않게 '홀로 나쁜남자'였다.
"선배는 잘 할꺼야" 후배의 격려를 들은 후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다. 지역 라디오 방송 작가였다. 경상도 깍쟁이 같은 작가 누님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오, 목소리 좋으시네요~."
평생 처음 들어본 목소리 칭찬이었다. '내가 그랬었나'라며 갸우뚱할 정도. 방송업계 사람들이 하는 '비즈니스 칭찬'이란 것을 감지했지만 1차 관문은 넘은 것 같아 안심이었다. 목소리에서 '퉁'돼 버리면 어쩌나 긴장했던 것.
물론 방송이 나가고 이후 한 달 여 동안 그 방송작가는 고민했다. '속았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 부정확한 발음에 대본 읽기 바쁜 전화 연결자. 작가는 속을 앵간히 끓인 듯 싶었다. 친절했던 작가의 목소리도 어느샌가 퉁명스럽게 바뀌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었다.
청취자 많은 수도권 방송만 됐어도 난 잘렸을 것이다. 널린 게 경제 기자니까. 하지만 지방은 그렇지 못하다. 대안이 없어 잘리지 못했다. 이 점에서 2002년 월드컵 전 히딩크 감독과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
이제 이 글의 결론 부분.
감동이 있을만한 스토리라면, '이런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을 딛고 방송 업계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올랐어요'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방송 작가의 우연치 않은 칭찬이 오늘날의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라는 결론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목소리는 가늘고 톤이 높으면 코맹맹이 소리가 베어 있다. 여유는 좀 생겼다만 숫자를 읽는다거나 된소리 발음을 내는 데 있어 '마음이 안드는 구석'이 많다. 아직도 작가랑은 데면데면하다. 그와의 벽은 여전하다. 그럴 수 밖에... 가끔 미안하다.
그리고 지방 라디오 방송을 발판 삼아 수도권이나 중앙 방송국 방송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거나 하는 '껀수'도 전혀 없다. '속았다'라는 느낌은 경북 지역 라디오 방송 작가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그래도 만 2년 넘게 그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경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그동안 잘리지 않았고 다달이 통장에 용돈도 솔찮게 들어온다. 방송국 프로그램 소개 홈페이지에 내 이름이 소개된 것에 만족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이다. 이게 어떤 계기가 될지. 방송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다 개편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 '내일의 나'가 된다는 걸 믿고 싶다.
얼마 전 그 라디오를 소개시켜 준 후배를 만났다. 그는 몇 개월 전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나에게 대뜸 물었다.
"선배, 아직도 방송 하고 있어요? 전 안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이눔아, 나 안 잘리고 잘 있다~
(일 할 시간에 일 안 하고 쓴 글~.. 머릿속 잡념을 씻겨 내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