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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Aug 16. 2022

40년전 인플레이션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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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만의 인플레이션, 1980년대에는 어땠을까 

산유국간 전쟁, 내전 등으로 국제 정세 급변 

한국 경제, 국제유가와 미국 연준금리 인상에 직격탄 

40년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올해와 내년은 힘들 수 밖에 

2~3년간 어려운 시기 보냈지만 바닥 치고 80년대 중후반 호황 

사진 : 픽사베이 


유성 : 요새 경제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미국에서는 40년만에 높은 인플레이션이라면서 '미친 물가'라고까지 하잖아요. 지난달 13일에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9.1%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7월 100원에 빵을 샀다면, 올해는 평균적으로 109원 정도를 줘야한다는 뜻입니다.


 : 요새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어요. 평균적으로 9%라고 한다면 품목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해석이 가능한거잖아요?


미국 물가지수 상승률(전년동월대비) 


유성 : 예, 그렇죠. 이른바 체감물가만 놓고 봤을 때 더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봐요. 물가라는 것을 집계하는 데 있어 짜장면, 택시비, 버스비, 쌀값부터 여러가지 품목별로 가중치를 둬서 계산하거든요. 전체 물가가 평균적으로 이 정도 올랐다고 해도 내가 자주 먹고 사는 것들의 물가는 더 올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최근의 물가 상승은 왜 이렇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해석이 있긴 합니다만...


유성 : 예,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겠죠. 아무래도 전쟁이 나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돈을 잘 쓰지 않게 되죠. 게다가 러시아는 자원부국,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주요 곡창지대인데, 석유 등 자원의 가격과 식량 가격이 일제히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있어요. 돈이 흔해졌다. 돈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제가 봤을 때는 이 부분이 가장 큽니다.


 : 그렇죠. 미국이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라고 해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고 했고,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도 그랬잖아요. 유럽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성 : 디플레이션, 즉 물가 하락을 우려하던 때가 불과 2년 전인데, 이렇게 상황이 급반전할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돈이 풀렸다는 얘기죠. 지난 21일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는데, 11년만의 인상이라고 하니 말 다한거죠. 그동안 사실 인플레보다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게 세계 경제, 경제선진국의 고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근 40년 동안은 인플레이션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게 이들 나라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요새 자주 듣는 말이 '40년만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오늘 들려드릴 얘기는 이 '40년만의 인플레이션'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인플레이션 상황이 40년만이라는데, 그렇다면 그때는 어땠냐라는 것이죠. 이때 상황을 보면 지금 이 인플레이션 상황이 어떻게 굴러갈지 예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40년전에도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 사태가 있었다는 얘기시죠?


유성 :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야 고물가가 생활화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해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입니다. 석유값은 오르지, 수출은 안되지,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국제적으로 정세가 불안할 때였고, 이에 따라 석유값이 크게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석유파동입니다. 조금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2차석유파동입니다.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바로 이란혁명과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었어요.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인 1980년 이란과 이라크 간 전쟁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국제 석유값은 널뛰듯 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나 할까요, 공교롭게 소련이 또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이란, 이라크, 소련.. 모두 산유국이죠. 1979년초 배럴당 15달러였던 국제유가가 단 5개월만에 39달러로 뜁니다. 요즘으로 치면 배럴당 60달러였던 유가가 거의 180달러까지 치솟은 격이니 당시 국제 경제는 말 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어요.


 : 1979년이면, 10·26 사태라고 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됐던 그해잖아요. 1980년에는 또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가 있었죠.



유성 : 맞아요. 한국은 1973년에 발생했던 1차 석유파동을 겪고 한숨 돌리던 때였습니다. 산유국이 아니라는 한을 중동지역 건설 시장에 진출하며 다소나마 풀던 때이기도 했죠. 중동 건설주가 사실상 대장주로 한국 증시를 이끌었고, 1977년 증시 거래 대금 20%가 건설주 관련 거래가 될 정도였어요. 1973년 중동 건설 수주액이 1억7400만달러 정도였는데, 1978년 81억달러로 훌쩍 뜁니다.


이때 또 부동산 붐이 엄청 붑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는 것이죠. 1970년대 들어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중동에서 특수를 누린 한국 건설기업들이 국내 시장에도 뛰어들면서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붑니다. 1978년 8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우려한 정부가 투기 억제책과 지가 안정을 위한 대책까지 내놓습니다.


이때의 금리 인상과 요새의 금리 인상과는 결이 다르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우려와, 해법으로 금리 인상이 됐다는 것은 비슷하죠. 물론 이 정도 금리를 올리면 되리라 봤는데, 이후 국제 정세와 경제는 예상을 뒤엎게 됩니다. 앞서 말했던 급변했던 국제 정세 때문입니다.


 : 1979년 이란 혁명, 소련-아프카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인거죠?


이미지 출처 : 인벤 


유성 : 예, 그렇습니다. 이란은 입헌 군주제였던 팔라비왕조가 무너지기 전까지 대표적인 중동내 친미국가였어요. 이 체제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여기에 주이란 미국대사관 점거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미국과 이란 간 관계가 급속히 악화됩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 이후 반전 연론과 정치 경제적 후유증이 없었다면, 무력으로 이란을 제압하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소련-아프카니스탄전쟁은 아프카니스탄 내 공산정권과 반공게릴라였던 무자헤딘과의 내전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됐는데요.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해 친미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것처럼 소련 또한 무자헤딘을 제압하고 아프카니스탄내 친소정권을 세우려고 했어요. 실제 친소정권이 세워지긴 했는데, 이슬람세력이 반란을 일으켰고 소련이 참전하면서 전쟁이 커집니다. 1989년 소련이 철수하기는 했지만, 아프카니스탄에 발이 묶이고 막대한 전비를 쓰게 되면서 소련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는 것에 러시아가 반대를 했고, 이를  빌미 삼아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잖아요.


유성 : 지금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발이 묶인 것처럼, 소련도 처음에는 자신만만했다가 발이 묶이게 됐죠. 지금 우크라이나군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무기 등 지원해주는 것처럼, 이때도 암암리에 무자헤딘을 미국 등에서 돕습니다.


산유국과 강대국이 끼인 전쟁으로 한국 경제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석유파동은 석유가격 상승을 불러왔고, 사실상 모든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를 불러왔죠. 정정 불안과 수출 부진으로 경기는 좋지 않은데 물가는 오르니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위기를 겪었죠.


출처 : GS칼텍스 공식 블로그 


미국도 마찬가지였어요. 1979년 미국의 인프레이션은 13.3%나 됐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4%포인트 올리는 조치를 단행합니다. 이 조치로 주식과 집값이 폭락했고 기업들이 파산했습니다. 1981년 6월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자 20%까지 기준금리를 올립니다.


여기서 볼때 연준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클 때면, 앞뒤 안가리고 팍팍 올립니다. 이 와중에 당시 한국과 같은 순외채국은 숨도 못쉴 정도의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고, 경제는 계속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겠네요. 


유성 : 1982년까지 거의 3년을 이렇게 보냅니다. 물론 1981년부터 좀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1982년 인플레이션이 가라앉자 다시금 경제가 살아납니다. 바닥을 치고 올라간 것이죠. 다시 말하면 한동안은 정말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겠지만, 이 시간을 버텨내면 또다른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선제적으로 주식시장은 이를 예견하고 있었고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1981년 정도 되어서는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죠.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 있던 1979년 12월 25일 S&P500의 하락치는 10.86%였는데 1년후 이를 회복하고도 10%포인트 더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죠.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보면 이렇습니다. 올해는 힘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주식과 부동산을 비롯한 전통 자산의 가격은 계속 하락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제압하기 위해서 고금리 정책을 계속 펼칠 것이고, 경기는 더욱더 침체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바닥을 쳤다라는 느낌이 시장에 돌면서 주식 시장은 오르기 시작하고, 다시금 호황기를 맞을 것이라는 것이죠. 이때의 이 타이밍을 잡고 투자하기 시작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어요.


지금처럼 장이 하락세일 때가 매수 타이밍일 수 있는 게 바로 그래서입니다.


실제 1980년 한국 경제도 산업화 이후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떨어지면서 호황을 누립니다. 바로 3저 호황입니다. 1988년 올림픽 특수까지 누리면서 한국 경제는 더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https://www.music-flo.com/detail/episode/anlo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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