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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외환위기, 1980~1990년대 쌓았던 한국경제의 자신감 붕괴
IMF 구제금융 받으면서 고통스러운 구제금융 과정 겪어
이후 2000년대 ICT혁명과 함께 한국경제 다시 융성기 거치게 되는 계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때 그나마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는 '백신' 돼
유성 : 요새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경제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긴 합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라 시장 금리가 올라가고, 대출 시장이 위축되고 이는 부동산 등 실물 경기로 이어집니다.
실물 경기 위기는 은행 대출 부실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은행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지난 글로벌금융위기 때도 이 같은 수순이었고 1930년대 대공황의 촉발점도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자산 부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윰 : 그래서 지금의 금리 상승이 불안한 것이고, 이런 과거의 전례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도 '경기 침체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들을 하는 것이겠죠.
유성 : 예, 그렇습니다. 여기서 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경험'이란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과거에 불황과 경제위기의 경험을 겪어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차이, 곧 학습효과입니다.
2020년 코로나19 쇼크 때 경제위기로 비화되지 않은 것도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쌓았던 노하우 덕분이거든요. 특히 2020년 코로나쇼크 때 동학개미 운동이 일었던 것도, 과거의 경험, '위기의 순간이 바로 저가매수의 기회다'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덕이 큽니다.
윰 :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앞으로 불황이 온다고 해도 과거처럼 큰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겠네요.
유성 : 예, 그렇습니다. 우리 경제가 지난 60년간 꾸준히 성장을 하면서 여러 성장통을 겪었는데, 그중 하나를 IMF경제위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1970년대 산업화 이후 1980년대 고도성장을 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와르르 무너졌던 때입니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금리와 달러값, 오일값이 낮은 3저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호재가 있었으니 바로 플라자합의입니다. 1985년 플라자호텔에서 있었던 이 합의는 일본 엔화 가치를 높여서 무역수지 적자로 압박이 컸던 미국의 숨통을 놓아주자는 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제 무역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는 효과를 낳게 됐고, 미국 바이어들은 브랜드 인지도나 품질은 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싼 한국 제품을 찾게 됩니다. 소니 '워크맨'을 대신해서 삼성 '마이마이'가 팔리는 것이죠.
이런 자신감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개최합니다. 1986년이란 숫자가 또 의미 있는 게 한국이 32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해이기도 하거든요. 이곳에서 이탈리아나 아르헨티나 같은 강호에 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싸웠어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당시 최강 헝가리에 9대0으로 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30년 사이에 환골탈태한 것이죠.
윰 : 1986년도 월드컵이라고 하면 아르헨티나가 우승했고, 마라도나가 있었을 때죠.
유성 : 뭔가 세계 강호들과 싸울만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하나의 증표가 될 것 같아요.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다가 1990년대를 맞게 됩니다. 1990년대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되던 때입니다.
1980년대 들어 고속성장을 멈추게 된 일본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낮췄고, 이때의 수가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얘기가 있죠? '금리가 떨어지면 자산 가격은 오른다.' 이런 공식과 같은 문구는 일본 부동산 시장에도 그대로 통했고, 일본 부동산 거품도 천정부지로 커졌어요. 1990년대 들어 붕괴되면서 일본은 경험하지 않았던 디플레이션을 겪게 됩니다. 참다못한 일본 정부도 1995년 엔화의 평가절하에 나섭니다.
상대적인 엔화의 약세는 달러의 강세로 이어집니다. '엔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한국 경제도 이제 본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죠.
윰 : 당시 한국 경제는 어땠나요?
유성 :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개선됩니다. 국민들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과거처럼 노동집약적 상품을 고집할 수 없게 됐죠. 일본제품과도 힘겹게 경쟁을 해야했고요. 수출에서 특히 고전합니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본격화된 것이죠.
앞서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수출이 잘 안되자 대출을 받아 여기저기 투자한 것처럼 1990년대 한국 기업들도 자금을 융통해 여기저기 투자합니다. 금리가 적은 단기 외채를 끌어와서 기업들에게 장기대출을 해줍니다.
예를 들면 만기 1년 짜리 이자가 낮은 외채를 들여와서 만기 3년짜리 장기 대출을 해주는 식이죠.
경상수지 적자도 고질적으로 계속됩니다. 달러는 계속 유출될 수 밖에 없어요. 외채 부담이 커지게 되죠.
이 모든 과정이 당시 한국 경제로서는 겪어보지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그냥 하던대로 빚을 내서 투자를 하고 순환출자를 해서 재벌 그룹들을 묶어놓고 하다보면 잘될줄 알았죠
윰 : 기업들이 또 방만하게 경영을 했죠.
유성 : 이때도 우리 정부는 '큰 일은 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국민적 불안감을 잠재우면서 일본 정부에 손을 내밀었죠. 결과적으로 일본도 한국 경제에 손절했고, 그 즈음, 그러니까 1997년 11월 5일 뉴스 하나가 뜹니다. 블룸버그통신에서 '한국 가용 외환보유고 20억달러'라고 짤막하게 뜬 것이죠.
쉽게 말해서 빚은 이따만큼 큰데, 갚을 돈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라는 뜻이죠. 채무자가 그 상황이라면 채권자들은 당장 몰려들 것입니다. '내돈 내놓으라'고.
부도가 나면 그 집에 빨간 딱지가 붙잖아요. 굳이 그렇게까지 비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시 정부와 국민들은 달러를 벌어올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팔았습니다. 우량 기업도 이때 팔렸죠. 금모으기 운동도 따지고 보면 우리집 세간살이 팔아서 갚을 돈 마련하는 격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비록 힘들었지만, 외환위기라는 중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구조조정을 합니다. 부실 금융회사를 통폐합하고 방만하게 운영됐던 기업을 퇴출했죠.
전 한가지 상징적인 장면으로 1998년 월드컵을 들고 싶어요. 그때 우리나라는 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졌죠.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이를 보고 비통해했죠. 당시 한국의 상황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한국이란 나라가 그래도 싸울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보여줬다면 말이죠.
윰 : 1998년 월드컵, 아직도 기억이 나요. 뭐랄까, 월드컵 때마다 절묘하게 당시 우리나라 분위기가 반영되는 것 같아요.
유성 : 예, 그렇죠. 그래도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1대1로 비기면서 뭔가 희망을 줬잖아요. 우리 국민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힘을 모았고 국제 외환시장도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을 돕는데 영향을 줍니다.. 원화값이 싸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살아났죠. 수출이 잘되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달러의 규모도 늘어나게 됩니다.
윰 : 위기라는 게, 겪을 때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또다른 경쟁력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유성 : 예, 맞습니다. 다시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있을 수 있고, 그때의 경험이 또 백신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죠. 단적인 예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 경제는 의외로 탄탄한 모습으로 잘 이겨냅니다. 큰 위기를 겪지 않고 무사히 넘겼죠. 수출기업들이 1990년대와 비교해 탄탄했고, 달러 등 외화자본의 축적도 비교할 수 없이 많았고,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 솔루션을 우리가 또 찾아가면서 노력해본 경험이 있었던 것이죠.
백신효과라는 게 비단 질병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사회와 문화에도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위기, 그러니까 앞으로 닥쳐올 기후변화, 저출산율, 세계인구100억시대, 미중갈등 등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줄 것이라고 봐요. 이것을 이겨내고 극복해가면서 우리 나름의 노하우가 쌓이고 또다른 발전을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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