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어수 감어인
현실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 그러니까 절대적이거나 종교적인 수준의 진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혹은 내가 가진 입장이나 생각이 나름대로 정당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할 때는 어떤 기준이 합리적일까요? 나름의 여러 기준들이 있겠지만, 저는 사람과 시간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거나 지지하는 의견, 긴 세월 동안 검증되어서 ‘그러하다’라고 받아들여지는 선택이라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간의 선택도 결국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서 보존하고 전승했다는 말이므로 역시 사람의 판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이 옳은 것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판단을 내릴 때 그래도 가장 기준이 될만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겸애(兼愛)를 주창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묵자(墨子)’는 이를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 거울에다 비춰보지 말고 사람에다 비춰보라고 했답니다(이 문장을 사유한 아름다운 글이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나무야 나무야’에 나옵니다. 저도 선생님의 글을 통해 이 문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미에 글을 붙여두도록 하지요).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평등하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
어리석은 이들의 잘못된 판단에 맞서서 홀로 옳음을 지킨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러하다면 그 이는 당대와 앞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사람일 터입니다. 그것을 성찰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추어 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옳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거울을 세워 두기는 하지만, 한 번도 거울을 닦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단히 성찰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딱딱하게 굳어져서 세상과의 불화를 자신이 옳은 까닭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된 자의식을 산처럼 키워서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이 힘을 가지면 차마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저지르기도 하지요.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너무나 허다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제가 예방의학 전공의와 석박사 학위 과정을 할 때 지도해 주셨던 은사 교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다 너를 나쁜 놈이라고 여긴다면, 네가 아무리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해도 너는 나쁜 놈이 맞다”라고 간결하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물론 비추어 볼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거울을 세워 두어야 하는지,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믿는 것이 그 의견에 대한 나만의 왜곡된 판단은 아닌지를 더불어 잘 살펴야 합니다. 그 또한 성찰에 포함되는 중요한 요소이니까요.
시간과 사람에 견주어 자신의 견해와 인식을 변형할 수 있다면, 어쩌면 진리에서 멀지 않다 하겠습니다. 쉽지 않지만 바르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 신문과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나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을 날마다 보면서 드는 짧은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나만이 옳다’라고 믿는 이들은 구태여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들을 필요를 느끼지도 않겠지요.
그러니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서이고, 그런 돌아봄을 가능한 만큼 서로 나누었으면 해서입니다. 무슨 대단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만큼은 저 스스로 행복해지는 거라고 믿으니까요.
무감어수 감어인 (無鑒於水 鑒於人)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 그루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옛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곧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2021.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