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께 드린 서신
지난 1월 31일로 저희 학교 학장 임기를 마쳤습니다만, 위기 상황 속에서 아무도 학장으로 나서지를 않으셔서 다시 학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착잡합니다만, 하기로 결정한 이상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새로 학장직을 시작하면서 학내 교수님들께 보낸 서신으로 제 마음을 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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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교수님들께,
저는 2월 12일에 22대 의과대학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응모자가 아무도 계시지 않아 차기 학장 선호도 조사가 반복해서 무산된 얼마 후, 총장님으로부터 학장직을 한 번 더 수행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의대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사태가 발생한 이후 학장으로서 보낸 지난 1년은 무도하고 무리한 정책으로 교육현장과 진료현장을 회복하기 힘들 만큼 무너뜨린 이들에 대한 분노와, 이런 중에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절감하는 무력감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지금까지도 너무 힘들었는데 도저히 더는 감당할 수 없겠다’는 마음과 ‘학교의 사정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는가’는 마음 사이에서 오래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학장직을 다시 맡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정하고 나서도 참 많은 생각과 후회가 있었습니다만 마음을 정한 이상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 학교를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생하신 보직자 교수님들 가운데 저와 함께 보직을 계속 맡아주시겠다는 분도 계시고 힘에 부쳐서 사임하겠다는 분도 계셔서, 다음 집행부를 구성하는 중에 있습니다. 집행부 구성이 쉽지 않아서 모든 보직이 채워지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는 대로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고, 이미 진료업무만으로도 힘이 드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교육 부담까지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 힘이 되는 방안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도 병원도 계속되어야 한다면, 우리의 현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손을 모아 구멍 나고 허물어진 곳들을 조금이라도 메워 가면서 학교와 학생들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일 수밖에 없겠지요. 표나게 잘 할 수도 없고 제대로 성과를 내기도 어렵겠으나, 선생으로서 의사로서 학교와 병원에 남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리 해야 하지 않을까 할 뿐입니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요구되는 일도 많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한두 사람이 감당해서 극복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니 우리 모두가 함께 마음을 내어야 버틸 수 있는 시기입니다. 저 또한 두렵고 답답합니다만 어떻게든 힘을 내어 보겠습니다. 학교의 모든 일에 모든 교수님들의 도움과 참여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 2. 13.
학장 강윤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