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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생훈장 Feb 15. 2023

히포크라테스 선서식

의학과 3학년 진급을 축하하는 행사입니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의학과 3학년에 진급하면서부터 병원 실습을 시작하게 됩니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을 임상현장에서 직접 배우게 되는 거지요. 2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학생의사’(과거에는 PK라고 했습니다)가 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우리 학교에서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을 개최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하지 못하다가 지난 13일 햇수로 4년 만에 다시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의과대학마다 여러 이름으로 실습 시작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행사 내용도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모님들을 초청하여 흰 가운을 자녀에게 입혀주는 의복례라는 순서를 행사 중에 갖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백 분 정도의 학부모님들이 참석하셔서 성황이었습니다(부모님들께서 할머니를 모시고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운을 입혀주고 난 후에 학생들을 한 번씩 안아주라고 권유를 드렸더니 모두들 꼭 안아 주셨는데,  그 모습이 애틋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도 부모가 되어 보니 자녀가 자라는  모든 순간들이 다 소중하고 함께 하고 싶은데, 이렇게 인생에서 성장의 한 과정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의례(Ritual)를 가족이 함께 경험하는 일은 참 귀하고 기쁜 일이다 싶었습니다.



학장이니 행사에서는 축사를 하게 됩니다.  선서식에서 학생들과 부모님들께 말씀올린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의학과 1,2학년 과정을 잘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한 여러분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에서 배운 의학 지식을 토대로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을 직접 만나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대부분 알고 계시듯이 ‘임상(臨牀)’은 환자의 침대 옆이라는 뜻입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 환자의 옆에서 의술을 행하는 일은 단순히 의학 지식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아니며 정확한 의학적 판단 능력과 사람에 대한 애정, 정서적인 공감 능력, 건전한 윤리 의식 등이 필요한 종합 기예, 즉 영어의 Art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해 오셨고, 앞으로는 환자의 곁에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책에서만이 아니라 환자들로부터 배울 줄 알아야 하며, 이러한 배움은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을 통해서 풍성해지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좋은 배움은 좋은 태도로부터 나옵니다. 열린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은사 교수님들과 선배 의사 선생님들에게 배우십시오. 여러분보다 먼저 의사의 길을 걸어가신 교수님과 선배님들은 누구보다 여러분의 배움에 필요한 내용을 잘 알고 계십니다.


겸손히 임하되, 적극적으로 질문하십시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질문이라도 묻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배우려 하지 않는 것, 아는  척하려는 태도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환자들을 존중하고 공손히 대하기를 바랍니다. 그 분들은 자신의 육신과 질병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가장 직접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분들입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시고, 결코 증례로만 축소시키지 마십시오. 우리는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십시오. 시간 준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적인 책임이지만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의업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십시오. 임상 실습은 혼자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공부임을 늘 유의하기 바랍니다.


자녀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학부모님들께 특별히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올립니다. 의과대학을 보내고 오늘 이 가운을 입게 되기까지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셨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학생의사가 되는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시고 자랑스러워 해주십시오. 오늘 이 순간이 학부모님과 우리 학생들의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중의 하나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마음은 언제나 설레는 법입니다. 가운과 청진기를 처음 착용하신 오늘의 이 마음을 여러분들이 의사로서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행사 후에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의복례 때 학생들에게 청진기를 걸어주기 위해 도열한 보직 교수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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