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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생훈장 Feb 09. 2023

어쩌다 학장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21대 학장직을 맡게 되다

2023년 2월 1일부터 임기 2년의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모교 출신이 아닌 제가 우리 학교의 학장을 맡게 되어 무척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학장은 고위 공직자라고 재산 등록도 해야 한다는데, 다른 일들은 그럭저럭 해내면서 살아   같지만  버는 데는 도무지 재주가 없어서 별로 등록할 것도 없습니다. 슬프기는 해도 고위 공직자라고 하니 먼가 뽀대나 보이기는 하는군요.


자주 말씀드렸듯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머리 무거운  맡는  질색했었는데, 전임 학장님 임기가 끝나기  개월 전부터 주위의  분들로부터 ‘당신이 학장    .    있을 거야라는 농반 진반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절대   거라고 펄쩍 뛰었는데, 팔랑귀 아니랄까  마음  구석에서는 ‘혹시 그럴 수도?’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께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게 되더군요.


그렇게 마음으로 반쯤 ‘나도 한 번 해봐?’라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해 송년회 자리에서 뵌 전임 학장님의 말씀이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학장직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서, 부학장님이 학장 대행을 하셔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구요.

예전에 비해서 학장이 해야 할 일은 늘었고 상대적으로 위세(位勢)는 적어진데다, 무엇보다도 함께 일할 보직자 교수님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워진 것이 아마 학장에 나오기를 주저하게 하는 이유들일 것입니다. 학장이야 자기가 좋아서 나서는 것이고 제 나름의 사회적인 평판도 얻게 되지만, 부학장이나 학과장 등의 보직은  일이 많은데 비해 얻는  보상은 너무 약소합니다. 게다가 요즘의 의과대학 교수들은 진료에 교육에 연구까지 요구받는 일도 많아서 굳이 맡지 않아도 되는 가외의 업무를 맡는 일이 당연히 달가울 리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이 걱정되기는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리 일이 어려워도 우리 학교의 위신이 있는데, 학장 할 사람이 없어서 대행 체제로 가는 건 너무 옹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과 ‘보직자 구성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기울여서 읍소하면 분명히 누군가는 맡아 주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나니 학장직을 맡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따라 왔습니다.


일단 결심을 했으니  다음 일은 순서대로 자연스레 진행이 되었습니다. 주위 분들께 결심을 알리고, 학장공모서류를 제출하고, 학장 선호도 조사를 위한 교수회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교수회날 파워포인트로 의견 발표를 하는 등등의 일이 지난  연말부터 올해 연초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의사국가고시 출제도 다녀오구요.


혼자서 나선 터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니 이전 학장님들에 비하면 수월하게 절차를 진행할  있었습니다. 임명 이후에 공개된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의과대학 교수님들께서 제가 학장직을 맡는  동의해 주셨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보직자 교수님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2주 동안 전화로 면담으로 거절당하는 일의 연속이었지요. 거절 당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빠지고 용쓰이는 일이라는 걸 사무치게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임 집행부에서 고생하셨던  분의 부학장님들께서 유임하기로  주시고, 다른 보직도 좋으신 교수님들이 수락해 주셔서  분이나 되는 집행부를 무사히 꾸릴  있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보직자 교수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다시 솟구치는군요^^


1 말에 지명을 받고 나서부터 갑자기 이런 저런 요청과 처리해야  업무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바람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  같습니다. 그리고 2 1일에 정식으로 임명이 되었고, 3일에는 총장님께 임명장도 받았네요. 학장이 되고 나니 새롭게 듣는 이야기며 만나는 사람들도 이전과는 비교할  없이 늘었습니다.


어떤 자리를 맡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정보와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처럼 인식하게 만들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 중요한 역할이 생긴 거지요. 사람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역할은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막상 제가 역할을 맡고 보니 자연인으로서의 저와 역할로서의 저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역국립대학의 의과대학장만으로도 그러한데, 장관이나 국회의원쯤 되면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해 보게 되네요.


한쪽 편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날을 세워 외치는 이쪽저쪽의 요구를 모두 들어야 하는 , 완곡하거나 직설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 사람들 사이에서 그럴듯하게 공적인 지위와 역할을 내세워야 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므로 어느 때보다 기도와 명상이 필요해졌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에너지가 달리기도 해서 물러나 고요한 시간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데, 그럴수록 정신 차려서 일상의 리듬을  정돈해야 합니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글도 그래서 쓰게   같네요.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학장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만만하지 않은 중에 계속해서 재미있어   있도록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학장이 되었다고 새롭게 만든 명함과, 축하해 주러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화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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