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안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가 싸준 반찬에서 나는 냄새였다. 반찬은 바다에서 왔다. 엄마 냄새는 바다 냄새이고 바다 냄새는 엄마 냄새이다. 엄마는 집에서도 바다 냄새가 나는 구역에서 일했다. 그곳엔 바다에서 온 음식이 가득했다. 바다와 엄마는 한 냄새였다. 엄마 손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고 엄마 소매 끝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
꿈처럼 느껴지는 일이 있다. 끙끙대며 누워있는 어린 자식의 뜨거운 이마에 엄마는 바다 냄새를 한아름 싣고 와서 찬 손을 뜨거운 이마에 댔다. 어린이의 불덩이 같던 몸은, 회오리치던 바다 냄새에 서서히 열이 내렸고 거친 숨소리도 평안해 졌다. 엄마손은 바다 냄새에 닳아져 맨질맨질했다. 주름은 졌으나 매끈했다. 매끈했으나 쭈글쭈글했다. 엄마 손엔 바다의 출렁임이 가득했다.
목포에 다녀온 지 사흘 째인 오늘, 드디어 감태 봉지를 풀었다. 봉지는 꽁꽁 묶어져 있었지만 바다 냄새는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봉지를 푸니 바다 냄새는 온 집 안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바다 냄새는 감태가 빠져나간 봉지를 담은 쓰레기봉투는 물론 아들딸 방까지 깊이 침투했다.
엄마가 힘없는 손으로 눌러 쓴 손주들에게 보내는 용돈 봉투의 사랑 메시지에서도, 봉투 속 만원짜리 몇 장에서도 엄마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엄마 냄새는 전라도 끝에서 경기도 끝까지 잘도 왔다.
엄마는 밤낮 할 것 없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식은 땀이 난다고 했다. 이가 다 빠져 발음이 새고 꼬이는 말로 엄마는
-너희 조심히 다녀라.
목이 바싹 마르고 기운이 없어 저 목구멍 아래에서 겨우 소리내는 엄마 목소리에서도 바다 냄새는 진하게 풍겼다.
바다 한 가운데 암태도에서 나고 자랐고 바다와 가장 가까운 뭍 목포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온 엄마는 바다 냄새 자체였다. 더구나 자은도 사람이며 소고기보다 바닷 고기를 더 좋아하는 아빠와 사느라 엄마의 바다 냄새는 더욱 짙어졌으리라. 엄마 손과 손톱, 머리, 옷에서 나는 바다 냄새를 잊지 않겠다. 언제 어디서든 바다 냄새 비슷한 것이 풍기면 엄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성호를 긋고 엄마를 위해 기도하겠다. 87살인 우리 엄마는 내겐 여전히 피부 탱탱하고 이가 성하며 잘 듣는,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엄마이다. (2022.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