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말수가 적으시다. 말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거나 눈물을 훔치시며 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신다. 말씀은 별로 하진 않으시나 감정 표현은 이렇듯 자유로우시다.
결혼해서 만난 어머님은 젊고 힘이 넘치셨다. 어머님은 평생 아픈데가 한군데도 없으시다며 건강을 뽐내셨다. 어머님이 활동하시는 주 무대는 부엌으로, 특기는 '음식만들기'와 '큰 손으로 음식나눔하기' 이다. 어떤 식재료든 어머님 손만 거치면 입에서 살살 녹아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린다. 취미는 음식 재료가 될 채소류, 생선 등을 수시로 다듬고 보관하는 것이다. 취미를 한 가지 추가하자면 TV 드라마 시청이다. 참, TV 드라마 시청과 관련된 특기가 한 가지 더 있다. 드라마 보면서 울기!
어머님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도 있다. 아버님의 큰소리. 우리 시댁에는 아직도 한국 전형의 가부정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집안의 대장은 시아버지로 배우자와 자녀의 생각과 결정까지도 좌지우지하신다. 혹시나 가족들이 본인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호랑이처럼 무섭고 큰 소리로 고함을 치신다. 바로 이것, 이 고함소리를 어머니는 가장 무서워하신다. 내가 시댁과 한 식구가 된 초기에 언젠가 어머님은 나에게 속엣말을 하셨다. 까다로운 아버님에게 맞춰살아온 서러운 세월을 이야기해 주셨다.
몇 십년이 흘렀다.
병든 곳 없이 건강하던 어머님은 여기 저기 병이 드셨다. 심장병으로 매끼 드시는 약이 한 주먹 분량이고, 갑상선을 절제하는 갑상선암 수술도 하셨다. 삭신 아픔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머님인데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했고, 넘어져 부서진 허벅지 뼈에 심을 박아서 긴 시간 입원하기도 했다. 왼쪽 눈의 시력은 잃었고 자주 넘어지신다.
어머님은 이렇게 건강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삶의 힘을 얻기 시작하셨다. 바로 농삿일이다. 얼마 전부터 동네에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신 것이다. 이 텃밭에서는 사계절 각각의 농작물이 심어지고 열매를 맺고 잘 익어 어머님과 아버님 손에 수확이 된다.
하늘이 두쪽나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아버님이 변했다. 대쪽같이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아버님이 그렇게도 무시했던 어머님을 돕기 시작했다. 어머님을 따라가 텃밭에서 오이와 호박을 따시고 집에서는 설거지도 하신다. 며칠 전 남편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평생을 불쌍하게 살아온 니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셨다.
바로 이 표현이 내 눈에 밟혔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긴 세월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아버님을 변화시켰다. 한편, 긴 세월은 어머님을 변화시키는 것엔 실패했다. 어머님은 여전히 남편에게 순종하며, 당신은 다 죽어가더라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며 쉬지 않고 일하신다.
'평생을 불쌍하게 살아온 니 어머니'. 이 말엔 아버님의 자기반성도 담겨 있다. 어머님의 평생 한결같은 헌신이 아버님을 감동시켰고 아버님은 노쇠해진 배우자가 안쓰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또 이렇게도 착한 사람을 자신이 못되게 군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신 것 같다. 어머님의 헌신은 인생 말년의 아버님을 선(善)으로 이끌었다.
요즘 어머님은 무거운 것을 많이 드셔서 수술했던 다리가 도로 아프다고 하셨다. 입맛은 없어지고 기운도 없다고 하신다. '왜 당신의 몸은 돌보지도 않고 여전히 젊을 때와 같이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이런 어머님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님의 삶을 묵묵히 생각해 본다. 이젠 알겠다. 일이 어머님의 고달픈 삶을 잊게 했고 일이 어머님의 존재를 유지시켰으며, 일이 어머님께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에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한치의 꾸밈 없이 선량한 마음 그대로 사람을 맞으셨고 음식을 해 먹이셨고 또 나눠주셨다. 어머님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로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사랑하셨다.
아, 어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