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희망' 사이에서

by 또다시

아들은 기숙사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고, 아들에 이어 바로 딸도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에 살았다. 딸은 대학 4년도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들 3년, 딸 3년 더하기 4년, 모두 합하면 10년 동안 우리 가족은 함께 살 수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작년 말, 드디어 딸이 대학 생활을 끝내고 집에 왔다, 비로소 우리 가족은 한집에 살게 되었고 소원을 이뤘다.


기쁨의 나날 중에 오늘 딸의 직장 합격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고대하던 소식인가. 그런데 환희도 잠시, 난 딸이 집에서 먼 곳으로 발령받을까 걱정하고 있다. 딸의 합격 순위를 봐서는 우리 시(市)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실망이 크다. 딸은 제쳐놓고 난 ‘나’를 생각하고 있다. 일희일비하며 시시각각 감정이 쉽게 변하는 나를 본다. 사람이 이리도 약하단 말인가. 자식 둘은 성인이 되었는데 난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으로 위태롭게 살고 있다니 말이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을까, 빈 둥지로 몇 해를 살면서 외로웠나, 남편이 싫어서 자식들에게 기대려 했던가. 난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삶을 달관하지 못하고 매번 괴로움에 빠져있단 말인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는 놀라운 인물이다. 7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80대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농장에서 평생을 주부로 일하며 보낸 그녀가 늦은 나이에 시작이 그림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할머니의 자서전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었다. 할머니는 101세까지 살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개척기로 살기가 매우 어려웠다. 할머니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자서전을 쓴 현재까지 자신을 삶을 술술 풀어냈다. 100년이 넘는 동안 그에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지만 그는 슬픈 일이나 어려웠던 일은 담담히 이야기했고, 기쁘거나 즐거웠던 일은 생생히 감사한 마음으로 증언했다.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나에게도 시련이 있긴 했지만 그저 훌훌 털어버리지요. 나는 시련을 잊는 법을 터득했고, 결국 다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사람들은 자주들 말한다. 할머니의 삶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그는 삶의 시련을 너무 오래 붙잡지 않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더 오래 간직했다.


나의 글을 가끔 절친에게 보여준다. 그는 충고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가 부족하다’고. 난 친구의 말을 나만의 색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나의 가치관 등으로 이해했다. 어느 작가도 같은 말을 했다. 작품 속에는 작가의 특성이 녹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오늘 떠오른 생각들을 바탕으로 내가 평소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돌아본다.

한동일의 <라틴어 산책> 중 밑줄 그은 부분이 있다.

Aegroto dum anima est, spes esse dicitur.(아파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Nolite ergo solliciti esse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i: sufficit diei malitia sua.(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앞으로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릴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언젠가 내 인생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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