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기

by 또다시

우리 학교의 A 선생님은 교사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운동을 잘해서 대회에서 수상도 했다. 또 그는 책을 많이 읽은 파워블로거에 유튜버이기도 하다. 나는 내심 그를 무척 부러워하고 있고 나도 그처럼 무언가를 잘하거나 업적을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를 알기 전부터 난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무엇을 잘하면 늘 부러워했다. 특히 예체능에 능한 사람을 보면 더 그랬다. 그리고 스스로를 작게 여겼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생각은 실행으로 가지 못했다. ‘포기’란 말은 붙이기 싫어서 여전히 ‘생각이나 계획’으로 남겨두고, 미련을 두고 남만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가 난 늘 허기지며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열심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나태한 삶이라고 판단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해서 눈에 띄어야(이름을 날려야, 칭찬을 들어야) ‘잘 산 삶’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 오케스트라 공연을 간다는 A 선생님을 보고 동학년의 B 선생님이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애들 밥은 누가 챙겨줘요!”

난 정신이 번쩍 났다. 능력자인 A 선생님을 누구나 대단히 여기며 ‘훌륭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런데 B 선생님은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B 선생님은 웃으며 그 한마디 던지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뭘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를 원하고 있다. <알고 보니 나의 욕망은 남의 욕망이었습니다> 책 제목처럼 난 내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 대한 나의 예의와 의무는, 내가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것뿐이다.”(<알고 보니 나의 욕망은 남의 욕망이었습니다> 중에서)


이젠 좀 편하게 살고 싶다. 학교 선생님과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좋은 책 틈틈이 읽고 이렇게 글 쓰며 또 신앙생활하며 잘 살고 있잖아. 이미 충분히 훌륭히 살고 있어. 남을 보지 말고 ‘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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