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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Kyu Apr 21. 2019

나의 파리아파트 같은 그림책

2013.파리의물건@Pilippe le libraire


내가 살던 파리 15구를 제외하고 가장 자주 다녔던 동네는 비네그리에가(rue Vinaigriers) 일 것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고, 이곳과 이웃한 러블리한 가게들이 많던 거리. 눈을 감고도 생생한 거리. 생마르탱쪽에서 이 거리로 접어들자마자 친구네 식당이, 프랑스 가정식을 파는 식당, 맞은편으로는 착한 마녀가 만드는 신비한 묘약 같은 허브 베이스의 음료와 음식을 파는 식당, 봉봉/쇼콜라 가게, 피쉬앤칩스.......그리고 지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을 구경했던 만화가게 [Philippe le librairie]는 내가 추억하는 파리의 면면들 중 가장 사랑할만한 곳이다.


이곳에서 파리의 아파트를 소재로 한 일러스트레이션 책 <Fenêtre sur rue 거리의 창문>을 발견했는데, 꽤 유명한 삽화 가라 짐작이 될 정도로 단어 하나 없이 그림으로만 구성되었는데도,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마치 13구 어느 거리 (rue)의 아파트  앞에서 24시간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액자식 구성처럼 프레임은 연극 무대의 컨셉으로 등장인물들이 한데 나와 무대 피날레 인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낮과 밤을 나눠 앞 뒤로 구성하여 아코디언 형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각 면은 시간의 시퀀스대로 펼쳐진다. 문자의 단서 없이도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이유다.  각각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다양한 사람들, 은밀한 사건의 발생, 방해받지 않은 개별적 삶으로 그려진 집집이었지만, 한 편의 예술 무대의 소재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 묘한 아름다움을 품었달까. 파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우리 삶도 이 그림책에서처럼 파리적인 아름다움의 실루엣으로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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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아파트에 한국인이 산다>

타인을 자처하는 삶은 분명한 선택이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하며, 정치적인 성향이나 돈벌이 방식에 대해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과 서로를 이웃 삼아 사는. 바로 그런 삶을 살고자 한 것은 ‘선택’이었다.

80살 된 고령의 아파트에서 우리는 수많았을 사건과 스토리를 상상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던 시간도 하나의 히스토리가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920년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로 최근 rez-de-chaussée 에는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아시아 커플이 살고 있다. 이들 전에는 구두 디자인을 공부하러 온 한국인 여자가 혼자 살았었다. 새로 온 이 커플도 학생 같다. 한 번은 집으로 가는 길에 그들이 불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엿들은 적이 있다. 남자는 Oui와 Non에 재미를 들린 사람처럼 번갈아 연발하고, 여자는 Qui, Que, Quel 등의 의문사를 바꿔가며 질문을 만든다. 그러나 머지않아 뭔가 여의치 않았던지 남자에게 짜증을 부리고는 이내 대화를 끝낸다. 아마 둘은 이제 막 파리 땅에 입성하여 불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 같다. Bienvenue Paris!"


"가끔 현관에서 마주칠 대마다 남자는 한 번도 빠짐없이 헌팅캡을 쓰고 있다. 크고 들뜬 목소리로 봉주르라고 한다. 그러면 곁에 있던 여자는 팔꿈치로 남자를 콕 찍으며 자기네 언어로 핀잔을 주는 것 같다. 아마 인사를 그렇게 크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 같다. 어쩌다 여자를 현관 우편함 같은 데서 마주치면 그녀는 자동적으로 Hi 하고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 봉주르로 정정한다. 여자는 불어보다는 영어가 편해 보인다. 파리는 영어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파리지엔들이 많은 탓에 자칫 마음을 높기 일쑤이나, 그들이 할 줄 안다는 말은 일종의 근거 없는 자기 체면인 경우가 많다. 그렌 데도 다른 유럽어들을 꽤 손쉽게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영어도 그렇게 만만하게 보거나 혹은 언어에 대해 기대하는 정도가 표면적인 소통을 위함에 지나지 않아 어쩌면 정말로 어지간한 정도면 잘한다고 믿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이웃인 아시아 여자에게서 거의 석 달간을 봉주르와 하이 사이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고 있다"  


15구의 여느 한적한 거리처럼 나의 아파트가 위치한 Lacretelle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아파트 건너편에는 UFR이라는 체육대학의 넓고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어 해질 무렵의 색온도가 적절히 배합을 이뤄 아주 보기 좋은 경치를 선사한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오래된 것들과의 조우, 이런 대도시에서 살면서 매일매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 아파트 전체에 아시아인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지만 적당히 타인의 삶을 자처하더라도 봉주르로 낯을 터가는 하루하루가 별달리 고독하지 않은 생활. 나는 파리의 어느 오래된 아파트의 맨 아래층  (rez-de-chaussée)에 기거하며 층층을 채워 살아가는 낯선 이웃들의 어떤 중력 같은 기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국적인 화려하고 친절하고 개방적인 느낌의 HELLO대신, 아마도 이런 게 파리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능한 최소한의 친절함으로 재빠르게 아는 체만 하자라는 식의 봉주르는 어째 날마대 해도 날마다 쉽지가 않다. 나의 이웃은 이웃이긴 하지만 샤틀레나 생제르만데프레 같은 데서 마주치면 아마도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지나칠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의 봉주르는 그들 안에서 내가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적어도 내 집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들의 존재에 대해 그들이 나에겐 얼마나 최소한의 위안인지 스스로 확인하고픈 의식이기도 했다.


방음이 잘 되지 않은 집들 간의 소음은 사람만이 내는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에는 제 갈 곳으로 온전히 가지 못한 숱한 영혼들이 기거할지도 모르고, 오래된 자재들의 묵은 한숨일지도 모른다. 나는 맨 아래층에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옆에서 옆으로 들려오는 미미한 소리를 조합해가며 '그 날 이곳에서 무슨 일이...'라는 식의 미스터리 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어떤 일이 한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상상. 설사 어떤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면서도 사실은 이곳 이웃들의 사소한 삶의 면면이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반면, 타인인 체로 살아가는 날들은 충분히 고단했다. 우리가 생활을 하면서 자아내는 소리들이 늘 신경 쓰였다.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타인은 낯설고 불명확하여 어떤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즉 나는 조용하고 싶었다. 궁금한 대상이 되어서도, 이해 불가한 인종이 되어서도, 위험한 이웃이 되어서도, 그 무엇으로도 드러나지 않으면서 편한 이웃 맺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말이다.


나의 봉주르..... 석 달만에 자연스러워졌다. 이웃에 대한 상상도 그즈음부터는 덜 미스터리 한 모습으로 오히려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일상의 삶이 팩트로 채워질 때까지 무수한 상상력은 늘 어떤 관음증 같은 모습으로 쓰이고 그려지길 반복했던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다 한들 우리는 이웃의 이름으로도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을 테고, 우리의 존재가 서로에게 분명 어떤 영향을 끼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을 자처하는 선택 안에서 편안했으며 그리고 우리는 한 아파트에서 서로를 상상해 주는 것으로 이웃을 이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파리 15구 Lacratelle가의 한 아파트에 한국인이 살고, 13 구의 한 아파트에 아랍인 가족이 살고, 16구에 정치인 부부가 살아가는 삶은 [거리 위의 창문]을 이루는 실루엣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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