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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Kyu Oct 06. 2019

63-1, 몽상가의 여정

서울은, 지금 살롱

생각해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현재가 지루해서 마음 닿는대로 아무 계획을 해본다. 계획이랄 게 촘촘해지기 전에 마음을 먹어버리는 통에 나는 어딘가 좀 몽상가스러웠다. 대학 때도 그랬다. 휴학을 하고 외국에 다녀와서는,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취업이 아니라, 공부를 길게 해봐야지...생각을 했고, 그게 바로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 때의 결심은 20대 해외생활이 준 신선했던 감상이 전부였다. 보호와 의존이 단절된 낯선 세계가 편했고, 어수선한 정신상태를 자유를 갈구하는 근사한 젊음의 전령이라 여겼으며, 무엇보다 인생의 다음 행보가 한번쯤은 나로 말미암은 무언가이길 바랬다. 복학은 치열한 취업준비의 시작일텐데, 내가 취업을 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온통 그 주제하나로 당분간의 시간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내 자신을 취업의 뜨거운 열기로부터 떼어놓는 마음가짐, 아니 그 이상의 결심이 필요했다. 그 결심이란 취업을 대체하는, 즉 미래의 대안이 취업이 아니라면 뭔데?라는 데 대한 답변이어야했다.


딱히 공부에 열을 올려본적 없던 나의 공부 결심은 부모님께는 나서서 응원해줄만한 일은 아니었을 테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보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경험과 기회를 잡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부모님의 우려나 기대보다 내 미래를 위한 결심에 꽂혀있었다.


나는 가열차리만큼 공부에 돌입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정치사회학,  저널리즘으로 전공을 바꿔 석사를 지원하겠다며 관련 교수를 무작정 찾아가는 짓도 했다. 짓,이라고 표현한 것은 교수의 냉랭한 무관심, 조교의 위로, 나의 눈물이 떠올라서다. 뭐 그때는 결심은 빨라도 계획이 서툴러서 시도만 하면 일단 다 되는 줄 알았기에 무작정 찾아가고, 저질러보곤했다. (참......그까짓 일로 눈물까지 그렁거렸다니...)그 외에도 대외활동의 경험을 위해 북한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해외 활동가들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나가는 등 열정적이었다. 거기다 유학준비에 필요한 시험 GRE 공부를 위해 어디서든 시험. 공부를 했다.


오래 앉아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는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너무나 거대하여 가만히 책상에만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태랄까....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어찌나 유난스러운 몽상가였는지 모른다. 그렇게 어수선하고 들뜨는 상태로 몰입다운 몰입을 하지 못한체 계속해서 방정맞게 움직여 다니는.....

그러다보니 제대로 책상앞에 앉을 시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어, 달리는 버스 안에서 공부를 했다. 걷는 와중에, 시끄러운 카페에서, 술집에서, 화장실에서, 도서관에서 어디서든 나는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가장 신나게 했던 순간은 버스안에서였고, 그 버스는 63-1이었다. 지금은 301이 되어버린 그 버스.


나의 63-1.  

대학교 1학년 때 잠실에 살던 나는 이 버스로 한 번에 통학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벗어나 압구정에서 놀면서도 나는 이 버스를 타고 흥을 돋았다. 그리고  4학년 때는 학교에서 압구정에 있는 학원을 가며 버스안에서 공부공부하며. 4년 내내 이 버스는 내 인생 동선과 같이했다.

졸업하고 더는 이 버스를 탈 일이 없게 되었지만, 마지막 63-1은 미래를 즐겁게 상상해보는 것으로 즐겁게 이 악물 수 있었던 순간과, 그 때 보았던 버스 밖 풍경을 고스란히 소환해낸다. 자, 이쯤되면 궁금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미래를 위한 결심'은 어찌 되었는지. 나는 원하는대로 전공을 바꿔 정치사회학이나 저널리즘 등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뭘 하려들지 않는 것을 결심했다. 작정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며 한국을 떠나버렸다. 난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때의 시간을 열심히 썼던 것에 후회되는 것도 없다. 한데 섞이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릴 것 같은 희망, 포기, 몽상, 꿈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뒤섞였던 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순도가 높았던 느낌으로 남는 그 때. 아무도 제대로 알리 없는 그 때의 내 열정, 즐거웠던 상상을 63-1은 기억할 것이다. 명륜동 길에서, 동호대교 위에서, 압구정역으로 이어지는. 그 때의 몽상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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