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전남편에게는 꿈이 있었다.
집을 갖는 것.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온전히 자신의 집이 있어야만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열두 평 남짓한 월세로 시작했다.
좁고 불편했지만 행복했다.
그는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늘 가족들의 끼니를 정성스레 챙겨주었고,
어차피 집에 와서 볼 텐데도
하루 종일 우리의 소식을 궁금해했다.
세 사람의 살림이 합쳐지니
자연스레 지출이 늘었다.
나는 전남편을 따라 지역을 옮겨
직장을 새로 구해야 했다.
그때 겨우 서른 살이었는데도
나이가 많다며
대부분의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써먹을 만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신입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번듯한 직장을 갖기까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전남편은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다시 저녁 7시부터 밤 12시까지
투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파
학교를 결석한 날이었다.
병원비가 없어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옷장을 뒤져
그나마 멀쩡한 옷들을 골라
박스째 중고시장에 내다 팔았다.
빌린 돈을 갚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느라
고단했을 전남편에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내 성격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기댈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에
엄마 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가 없었다.
걸어서 30~40분 정도 되는 거리였지만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가는 길에 있던 백화점에 잠시 들어갔다.
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명품 매장에서 가방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