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19

by 규잉

우울은 언제든

나를 집어삼킬 수 있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선생님은 말했다.

나는 결혼을 통해

안정을 얻고 싶었을 것이고,

그전에 겪었던 힘듦에 대한

어떤 보상 같은 것을 기대했을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황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고

그만큼 마음이

더 지쳐버린 거라고 했다.


약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럴수록 가족들과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전남편은

긍정의 힘이나 기세 같은 것으로

삶을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것이

정신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약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라고 했다.


아마도

응원이었을 것이다.


그와 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각자의 방식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대화를 할수록

서로 더 어긋나기만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기준에서

그의 고민들은 하찮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그런 고민을 하면서

나의 우울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점점 그가 미워졌다.


그때의 우리를

한 발만 떨어져서 볼 수 있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삶과 사랑은 닮아 있다.


대부분의 것들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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