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3

by 규잉

처음부터 굉장한 난관에 봉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태교에

목을 메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임신 당시 힘든 일이 많았던 탓인지,

제대로 된 태교를 해보지 못해서

동경의 마음으로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지만,

뱃속에서부터 나와 함께 험난했을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청난 기량을 뽐냈다.


한 번에 자는 시간이 30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안겨서 20분 정도 잠들었다 깨면

밤이고 낮이고 빼액빼액 울어댔다.


수중에 있던 돈으로 겨우겨우 구한 원룸에서

주민 신고를 몇 번이나 당했는지 모른다.

밤 11시가 넘으면 아이를 업고 골목골목을 걸었다.

어떻게든 달래보려 구구단도 외고,

뽀로로 노래도 불러보고,

보이는 간판마다 읽어주기도 했다.


조그만 게 목청은 또 얼마나 좋은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우는 통에

인근에서는 유명했을 정도였다.


아프기는 또 얼마나 자주 아픈지

한 달에 서너 번은 병원 신세를 졌는데,

병원에서도 밤이 되면

화장실이나 로비에서 달래주어야 했다.


병원 화장실에서 우는 아이를 안고

함께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뼈만 남았을 정도로 지쳐 있었지만,

아이를 안고 있으면

가쁜 숨과 심장 소리가 또렷해졌다.


힘들었지만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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