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유, 존중, 공감, 존엄, 죽음.
공감을 참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을 정도로 내 장점은 공감능력이다. 그러나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항상 공감을 잘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장점이 눈치 없이 발휘되기도 했다. 알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은데도 아무 때나, 누구한테나 공감회로가 작동 돼서 내 마음만 힘들었다. 이렇게 이도저도 아닐 바에는 차라리 공감능력을 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공감’ 자체를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노력을 멈추었다.
공감능력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 능력이 없으면 소통할 수 없으며, 소중한 내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없다. 그럼, 자신도 모르게 내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해도 인간이기에, 우리는 노력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하고, 생각이나 감정에 공감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서로 인정하고, 맞춰가며 살아간다.
그러니까 공감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그 능력을 버리는 게 아니라, 사랑해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에 대한 자부심을 연극 ‘bea’를 보면서 오랜만에 느꼈다.
연극 ‘Bea’는 만성체력저하증상으로 침대 위에서만 지내는 28살 비가 레이를 만나면서 자유를 찾게 되는 이야기다. 비는 엄마인 캐서린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움직일 수도 없어서 침대 위에 누워 있거나 컨디션이 좋을 때는 벽에 기대앉아 귀걸이를 만드는 게 다이다. 옷을 갈아입지 못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려워서 소변줄을 달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매일 똑같은 곳에서 같은 자세로 눈만 깜빡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였던 비가 간병인 레이를 만나면서 활기를 찾는다.
엄마보다 더 자기 말을 잘 알아듣는 레이를 마음에 들어 한다. 그리고 비는 엄마에게 전할 말을 받아 적어 전해달라고 레이에게 부탁한다. 편지 내용은 ‘나 죽고 싶어, 엄마가 도와줘.’ 였다. 일단 받아쓰긴 했지만, 레이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전해주지 못했다. 캐서린이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는 레이가 없을 때, 캐서린에게 편지를 주고야 말았다.
편지를 읽은 캐서린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지만, 결국 비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매우 많은 약을 먹고 결국 죽음에 이른 비는 비로소 자유를 찾는다.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비가 침대에서 나와 방 안을 활보하고 집을 벗어나 들판을 뛰어다닌다. 죽음 이후의 곳에서는 비의 애칭 ‘붕붕이’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된 모습에서 막을 내렸다.
엄숙해질 수밖에 없는 주제와 이야기였지만, 코믹한 대사와 장면이 많아서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았다. 그래도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실감 나고 진정성 있는 연기였다.
나는 맨 앞에 앉아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이 더 세밀하게 보이고, 감정이 온전히 나에게 전달됐다.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는지 배우들의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맨 앞 좌석은 부담돼서 피했는데, 겪어보니 좋은 경험이었다.
비의 외면은 침대에 묶인 생기 없는 환자지만, 내면은 여느 28살의 아가씨와 다름없었다. 자유로워지고 싶고, 순수하고, 해맑고, 활기차고, 풋풋한 20대 여성이었다. 성격은 밝고, 장난기가 많고, 당차고, 호기심이 많고, 솔직했다. 좋아하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28살보다 더 어린, 소녀 같기도 했다. 그런 본모습이 만성체력저하증상에 가려진 채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매우 아프게 느껴졌다. 신체는 침대에 묶여있지만, 생각만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건 누구나 고통스럽고 버티기 힘든데, 매우 활발하고 기운 넘치는 성격의 그녀는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그런데도 8년 동안 꿋꿋이 버텨온 그녀가 기특했다. 그래서 그녀가 8년 만에 죽음으로써 존엄을 지키고, 자유를 되찾겠다는 결정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은 비에게 도전이고, 용기이자 자유를 향한 간절함이었을 거다.
이승에서는 캐서린이 그녀를 ‘붕붕이’라고 부르는 대로 살지 못했지만, 저승에서는 애칭에 걸맞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 꽃 같은 노란 드레스와 예쁜 구두를 신은 것까지 마치 벌이 힘차게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비의 엄마 캐서린은 남편이 도망가서 혼자 비를 키웠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비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는 걸 보면 캐서린은 매우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다. 딸이 아픈 만큼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해서 일도 열심히 했다. 일하면서 자식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을 텐데, 아픈 자식을 그것도 혼자 키우는 그녀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일을 끝내고 비가 있는 집에 가면 무기력해 보이던 캐서린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타인에게는 냉정하고, 차갑고, 까다로운 캐서린이지만 비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비가 처한 상황에 비해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캐서린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무엇보다 캐서린은 자신이 아파도 자식의 결정을 지지해 주는 엄마였다. 비가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 자유를 만끽하는 행복한 표정의 비와 상반된 캐서린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늘 비와 함께였던 이불을 안으며 울부짖던 그녀를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안타까웠다.
레이는 비를 만나자마자 많은 말을 쏟아내서 첫인상이 수다스럽다였다. 그러나 레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내 말이 널 기분 나쁘게 한 건 아닌지 매우 걱정돼.’라는 진심이 들렸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이 한 말에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 돼서 설명을 덧붙이다 보니 말이 많아진 듯했다.
비의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비와 캐서린의 마음을 모두 신경 쓰는 모습과 비의 말을 쉽게 알아듣는 모습은 레이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천재적이었다. 타고나기도 했지만, 자폐가 있는 누나를 돌보면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이 모여 천재적인 공감능력을 가진 레이로 성장한 듯 보였다. 천성도 선하고 여리다. 또래 남자들처럼 감정적 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한다. 자기 자신이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No! 존중해줘”라고 단호하게 말할 줄도 안다.
레이 덕분에 비는 자유를 찾게 된다. 캐서린은 레이를 만나면서 비의 입장을 더 헤아릴 수 있게 되고, 비가 하는 말도 더 잘 알아듣게 된다.
비가 환자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일 수 없고, 옹알이만 하는 비를 보여주지 않았다. 비록 침대 밖으로 나가진 못해도 침대 위에서 뛰며 춤도 추고, 똑 부러지게 말도 잘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이 모든 건, 레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레이에게는 비가 말도 잘하고, 밝고, 에너지가 많고, 춤을 좋아하는 20대 여성으로 보였던 거다. 이는 레이의 공감능력 덕분이었다. 레이의 남다른 공감능력으로 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딘가 허술해 보여도 사람의 이면을 볼 줄 알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지혜롭고 깊은 내면을 가진 캐릭터였다.
그런 레이도 공감을 못 할 때가 있었다. 자폐의 특성을 잘 알면서도 누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천재적인 공감능력을 가졌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한계를 마주한 거다. 레이는 비를 돌보면서 한 층 더 성장하게 되고, 그 한계와 부딪혀보는 길을 택한다.
레이는 공감의 힘과 한계를 인간으로 표현한 캐릭터였으며, 이 연극에서 가장 비범하고, 다면적이었다.
연극 ‘Bea’는 우리가 함께 가야 하는 것들을 깊이 생각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건 자유, 존중, 공감, 존엄, 죽음이었다. 이 5가지의 존재를 그동안 얼마나 소홀히 대했는지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사유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신체는 묶여 있지만, 내면은 자유로웠던 비. 몸과 마음 모두 자유를 꿈꾸며 도전하고, 결국 꿈을 이룬 비. 존중해달라고 외치는 레이를 통해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 비. 딸의 결정을 존중해 준 캐서린. 조앤을 떠올리며 친구의 처지를 공감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같은 처지가 되고 나서야 반성하는 비. 딸의 고통을 공감해 보려고 침대에서만 생활해 본 캐서린. 공감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레이. 그럼에도 공감의 한계와 부딪혀보는 길을 선택한 레이. 생명만 부지하는 건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비를 통해 표현한 것. 자유와 존엄을 지키려면 죽음이라는 방법밖에 없는 비의 현실까지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자유, 존중, 공감, 존엄, 죽음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2시간 동안의 연극에 다섯 가지를 모두 담은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개의 주제 중 가장 정이 갔던 건 공감이었다. 평소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공감과 관련된 장면이나 대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보지 못하거나 보려 하지 않는 걸 마음맹인이라고 칭한 것과 우리는 상대의 입장에 놓이는 걸 싫어한다는 내용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또 공감의 한계를 맞닥뜨리게 되거나 공감능력으로 인해 마음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맹인이 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의 공감전원은 쭉, 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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