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ul Aug 16. 2019

작은 책상위에 차려진 한 상.

나의 옛날 이야기.

나는 고시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노량진 고시원에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이 없다는 핑계로 본가로 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내려가서 좀 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겨우 스물한살 마지막 달에 취업을 했던 걸까.  이른 나이에 내 꿈을 이뤘다는 뿌듯함과 벅찬 감동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 대가 중에 하나가 번듯한 나만을 위한 보금자리였다.      


혼자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으며 힘들어하고 그렇게도 원했던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잠시 틈이 생겼을 때도 나는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꿈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며 서울에 계속 살았었다.   

그즈음 내 고시원생활도 시작됐다.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덕분에 처음으로 육체적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쉴 수 있는 휴일이 생겼고, 집에 내려갈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휴일, 

집에 오랜만에 내려가 휴식을 취했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고, 처음으로 집에 가서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꿀 같은 가족과의 휴식을 취하고, 딸의 반찬을 싸줄 때마다 나오는 엄마의 큰 손 덕분에 나의 짐보따리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가짓수는 3가지 정도밖에 안 됐던 거로 기억하는데 큰 락앤락에 담은 양은 혼자 먹기에는 정말 많았다. 거기에 다른 짐들도 있었기에 정말 무거웠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힘든데, 고시원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왜 이렇게까지 많이 쌌냐며 투덜댔다.      


그런 내 투정에 엄마는     

“대신에 엄마가 터미널까지 들어줄게.” 라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그럼 뭐해. 서울에서 지하철 타고 걸어가고 그런 건 다 내 몫인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를 달래듯 나를 달래준답시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황당하면서도 무척이나 소녀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무척이나... 귀여웠다.)     

서울에 도착하고, 작은 키에 지금에 비해 훨씬 마르고 작은 체구였던 내가 그 무거운 것을 들고 낑낑대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걸어갔다. 운이 좋게도 에스컬레이터도 없던 지하철역 계단을 오를 때는 맘씨 좋은 분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조그만 애가 혼자 낑낑 대는 게 안쓰러우셨나보다.)   

  

그렇게 어찌저찌하여 고시원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까지 올라가서 겨우 내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미니냉장고에 반찬들을 넣었다. 

냉장고가 말 그대로 미니였기 때문에 가져온 것들을 다 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테트리스 실력을 간만에 살려 꾸역꾸역 다 넣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밥을 먹어야 했지만 밥을 가지러 가려면 공용주방까지 가야하고,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사오기는 더 귀찮고, 체력이 이미 바닥난 나는 대충 씻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일이 끝나고 고시원에 돌아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머리와 몸을 쓰는 일이었기에 고시원에 오면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고파서 손이 다 떨릴 정도였다. 또 한 주를 버텨야하기에 항상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사와 야식을 먹으며 꾸역꾸역 체력을 보충했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미니냉장고에 박혀있는 반찬이 내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햇*을 사고, 공용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햇*을 고시원 방에 들고 갔다. 책상에 있는 노트북을 침대에 올려놓고, 밥과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들을 늘어놓았다.  책상 위에 세계적인 군것질거리들이 가득했던 모습이 순식간에 한식 상차림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져왔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을 경기도에서 다녔던지라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들고 가서 먹은 적은 많았지만 그 때 처음으로 엄마의 반찬을 보고 울컥했다.     


집에 내려가서 집밥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와서 먹는 집밥은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주었다.      

작은 책상 위에 차려진 상차림은 나에겐 한식집보다도 더 화려했고, 풍족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내 작은 책상에서는 한식 한 상이 차려졌다.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 눈이부시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