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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May 06. 2020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지 않는 것도 있다.

나는 어릴 때 왼손잡이였는데, 여자가 왼손잡이면, 팔자가 세다는 친가 쪽 친척들의 말에 엄마는 손을 때리면서 나의 왼손잡이를 고치려고 하셨다. 엄마의 신경은 온통 나의 왼 손에만 있었기 때문에 젓가락질에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바꾸기도 힘든데 젓가락질까지 하려니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잔꾀를 부렸던 것 같다. 엄마의 시선은 나의 왼손에만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가장 잡기 편한 자세로 젓가락질을 했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나올 만큼 생각보다 나의 젓가락질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간혹 있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젓가락질 못해도 밥만 잘 먹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스스로 젓가락을 쥐는 나의 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신경을 쓰면 한 손으로 먹긴 하지만, 가끔 양손으로 먹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젓가락질까지 어설프게 하니 밥 먹는 내 모습이 거슬렸다. 그 이후로 나는 윗사람과 밥을 먹을 때마다 신경 쓰였고, 불편했다.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앞에 있는 것만 먹거나 국이나 찌개만 먹었다. 바꾸고 싶었지만, 몇십 년을 해오던 습관이기에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거의 밖에서 밥을 먹을뿐더러 윗분들과 식사를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에 쫓겨서 빨리 먹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젓가락질 고치겠다고 허둥지둥, 느리적대며 먹을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나는 하고 싶어도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 내서 연습은 못하지만, 어차피 집에서 혼자 밥 먹으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는데, 한 번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다가도 이제 와서 뭐하러 고치나 싶어 넘겼다.


그러나 생각보다 꽤 젓가락질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컸었나 보다. 할까 말까를 몇 번 반복하더니 결국 도전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밥 먹을 때만큼은 올바르게 젓가락을 쥐고,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그냥 하려니 반찬 하나라도 집을 수 없었고, 손에는 쥐가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첫날은 결국 원래 습관대로 먹었다. 그리고 교정용 젓가락을 사서 그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교정용 젓가락은 붙어있고, 구멍에 손만 끼우면 되니 쉬웠다. 손에 쥐가 나지도 않았고, 이것저것 잘 집어 먹었다. 그 후로 나는 집에서는 교정용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젓가락질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국물요리가 아니면 무조건 젓가락으로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양손을 쓰던 습관도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젓가락 잡는 자세를 외우게 되었다. 밖에서 먹을 때는 원래의 습관대로 먹었는데, 하루는 기대를 걸고 연습한 대로 음식을 집어봤다. 자세는 외웠지만, 힘을 주는 게 어설퍼서 음식을 집지 못했다. 결국 또 한동안 교정용 젓가락으로 식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집에 간 나는 습관처럼 집에서 교정용 젓가락으로 먹던 것처럼 젓가락질을 했다. 신기하게도 면 종류는 제외하고 다른 음식은 놓치지 않고 잘 집었다. 젓가락의 모양을 보아하니 뭉툭하면서 사각형인 부분이 내가 잘 집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마트에 가서 그 젓가락과 비슷한 것을 찾아 구매했고, 그 후로는 그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다. 비록 사각형의 젓가락에서만 된다는 것이지만, 드디어 교정용 젓가락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사실에 기뻤다. 희망이 보였고, 도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그 젓가락에 익숙해지면서, 원래 집에 있던 납작한 쇠 젓가락으로도 면 종류만 빼고는 모든 음식을 잘 집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어느새 나는 원래부터 해왔던 것처럼 올바른 자세로 젓가락을 쥐고, 면 종류까지 모든 음식을 잘 집어 먹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젓가락질을 올바르게 잘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실패할 것 같아 두려웠던 마음도 없어지고,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소소한 도전에 성공했을 뿐인데, 대단한 성취감도 느꼈다. 이제 밥 먹을 때마다 기죽지 않고, 내 손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누구 앞에서든, 어디서든 당당하게 이것, 저것 골고루 잘 집어 먹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지 않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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