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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May 06. 2020

스물아홉, 나를 만났다.

나를 마주하는 일에 도전했다.

나를 마주하는 것. 스물아홉의 내가 드디어 그 일에 도전했다.

도전하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스물여덟이 되고, 점점 서른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평소 잡생각이 많은 나는 더 조급해지고, 쓸데없는 걱정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안 그래도 머릿속에는 큰 눈덩이가 가득 찼는데, 거기에 더 큰 눈덩이들이 생겨나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들을 하나씩 버렸다. 버릴 것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구분하다 보면 결국엔 또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순서도 정하지 않고, 구분도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의 눈덩이들을 부숴버렸다. 그렇게 하나씩 하고 보니 바라는 대로 눈덩이들은 모두 부숴졌다. 이제 머릿속 세상은 편안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고, 어지러웠다.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형체를 잃어버리고 사방에 흩어졌던 눈들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여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눈이 녹듯이 나의 머릿속 세상의 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놔뒀다. 언제 녹을까 하며 멀리서 턱을 괴고 지켜봤다. 하지만 녹을 생각은 1도 없길래 나는 회유하듯이 눈에게 따뜻한 바람을 쐬어주기도 하고, 어루만져주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루빨리 이제는 좀 편안해지고 싶은데, 눈은 야속하게도 그대로 있었다.


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방법을 생각했다. 생각 끝에 드디어 찾았다. 그러나 찾은 방법을 실행하지 못했다. 솔직한 시선으로 나를 마주해야 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 하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질 것 같은데,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것처럼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것은 즉,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일이 꼭 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려줬다. 이를 눈치챘지만, 선뜻 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스물아홉이 되고, 난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동안 꾹꾹 눌러가며 잘 참아왔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한계가 온 것이다. 이러다 진짜 내가 손 쓸 수도 없이 무너지겠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1%의 사랑은 있었나보다. 위기를 느낀 나는 결국 솔직한 시선으로 나를 마주하는 것에 도전하게 됐다.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에 도전하지만, 나는 반강제였다. 그래서 별 거 없는 시작이었다. 미약한 시작이기에 결말은 어찌 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살려면 하긴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전처럼 애써 외면하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편견이나 거짓으로 덮인 시선으로 보지도 않았다. 진심으로, 그리고 솔직하게 나를 마주했고, 들여다봤다.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시작처럼 결말도 미약했을까. 아직 결말은 모른다. 아직도 나의 도전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나는 그 도전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고, 나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나조차도 치유해주지 않았던 그 상처를 나는 지금 열심히 연고를 바르고, 새살이 돋아나길 바라며 옆에서 간호해주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못난 모습이든, 잘난 모습이든 모두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사랑하게 되니까 나에게 사랑을 주는 이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어색해서 괜히 도망치던 내가 이제는 온전히 즐기고, 감사히 받을 줄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도 타인에게 친절이나 배려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게 됐다.

결말은 아직 겪지 않아서 모르지만, 알 것 같다.

이 도전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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