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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Nov 27. 2020

이쁜 짓도 정도껏 해야지.

아주 어릴 때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었다. 세 발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자전거와 함께 데구르르 굴렀다. 중간에 넓은 계단이 있어서 다행히 대참사는 면했다. 다리, 팔, 얼굴에 상처가 난 것으로 마무리됐다. 엄마가 다친 곳마다 연고를 꾸준히 발라줘서 나는 다리와 팔에 흉터가 하나, 두 개씩만 남았다. 특히 정성 들여 연고를 발라준 얼굴에는 흉터가 남지 않았다. 엄마는 왜 혼자 자전거를 들고 내려갔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있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여기까지 엄마가 기억하는 것이다. 난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자전거와 함께 계단에서 구르던 순간과 그때 들었던 생각만 기억날 뿐이다. 이제는 이 기억마저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그때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이니까 여섯 살쯤이었을 것 같은데, 나는 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결과 엄마를 생각하는 징표가 된 흉터가 다리와 팔에 남겨졌다. 다리는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팔꿈치에 있는 상처는 진하게 남아있어서 여름이 되면 항상 친구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럼 나는 어릴 때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굴렀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친구들은 대부분 깜짝 놀라거나 걱정했다. 어떤 친구는 왜 너 혼자 들고 내려갔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 질문에 아무 말 없이 웃어 보였다. 내 몸에 흉터가 생겼다고 해서 그 날의 일을 후회한 적은 없다. 생색은 더욱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 날의 일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추억일 뿐이었다. 그 날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그 날의 전에도, 그 날 이후로도 부모님에게 ‘이쁜 짓’이라고 불리는 행동을 주로 했다. 엄마가 아플 때면 약을 사 와서 엄마에게 건네주고, 발 받침대에 올라가서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엄마가 잠깐 외출을 했을 때 낑낑 대며 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줬다. 아홉 살부터는 엄마의 제사 준비를 도와드렸다. 야채를 다지고, 전을 부치고 제사가 끝나면 뒷정리를 했다. 부모님의 이혼 서류를 보면서도,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그저 들어줬다. 우느라 잠을 못 잘 만큼 밤마다 싸우는 부모님에게는 나보다는 동생을 위해서, 들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때문에 화를 냈다. 부모님의 하소연을 들어줬고, 동생의 짜증도 받아줬다. 그러나 나는 식구들에게 하소연도 못했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티 내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억울해졌다. 나는 식구들에게 기대지도 못하고, 하소연도 못하는데, 왜 나만 들어줘야 할까? 그래서 나도 짜증도 내보고, 화도 내 보고, 하소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드러냈다. 돌아오는 것은 위로나 공감, 경청, 격려가 아니라 예민하다, 부정적이다, 넌 참 이상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라는 말들뿐이었다. 동생은 내 말을 다 잔소리로 여기며 듣지 않거나 무시하고, 나를 이해 못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식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태도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라고 똑같이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왜 나한테는 그렇게 해주지 않는 거야?’

‘들어주고, 위로 한 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한 마디로 서운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입을 닫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괜찮은 척했다.


때때로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이 나올 때가 있어도 더 부딪히지 않고 그저 넘겼다.     

내가 참으면 모든 게 다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참는다’의 ‘이쁜 짓’은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된 ‘이쁜 짓’들처럼 참는 것도 나중에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쁜 짓’도 나를 돌보면서, 정도껏 해야 했다.

결국 나는 내가 정말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꾸 나의 감정이 때때로 나오기도 했다. ‘이쁜 짓’을 해야 하는데, 눈치 없이 삐져나오는 나의 감정들이 무척 싫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나는 그때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또는 해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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