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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l May 26. 2021

달라진 시선으로 과거를 마주하고 나서의 결론_3

피해야 할 때는 피하고, 피하지 말아야 할 때는 용감하게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문제나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 더 커지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상처를 주더라도 덜 줄 수 있다.


즉,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싸울지라도 제대로 직면하고, 상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때로는 상대방까지 성장하게 한다. 상황을 해결하기도 하고, 관계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나중에 진가가 발휘된다. 


쌈닭처럼 무조건 싸우려 드는 것은 안 되지만, 싸움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해서 (but. 신체적 폭력, 언어폭력 등 상식에서 벗어나는 싸움은 나쁘다.) 갈등이나 문제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한쪽만 맞춰주거나 피하기만 하는 것도 안 된다.


내가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지도 않을뿐더러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이 넘어간 것 같지만 사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거나 변질되는 시작점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는 애정이 식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아예 관계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의 소리에게 했던 것처럼 회피했다. 도망치는 내가 스스로도 창피했는지 피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라고 포장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다 괜찮다고 쿨 한 척, 성격 좋은 척, 착한 척 위선을 떨면서 갈등이나 문제를 직면하기 싫어하는 나의 비겁함을 가렸다. 용기 내고 부딪힌 적이 있긴 했다. 분노, 억울함, 서운함, 기분이 상함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이미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한계를 느꼈을 때여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예 끝나버린 경우도 있었고, 내가 지쳐서 흐지부지 되기도 했다. 보람은 없고 감정 소모와 시간낭비만 된 꼴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와 진심으로 가까워지려 했던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조언과 충고를 하면서도 반대로 나에게 듣고 싶어 했다.

내가 배려하고, 맞춰주는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해주고 싶어 했다.

나의 생각과 솔직한 감정에 관심을 가졌다.

단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내민 갈등에 대해 피하지 않으려고 했고 대화를 원했다.

나를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부딪히려고 했다.

그들은 나처럼 회피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나에게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연애를 해봐야 한다고.      

그 말의 의미를 연애를 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좋든 싫든 표현하는 법을 알아갔고, 부정적인 감정도 늦지 않게 표현했다. 혼자 속으로 삼키는 기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제대로 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의견 충돌 또는 싸움이라는 게 정말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제대로 사과하고 화해하고,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법을 배웠다. 관계가 ‘찐’으로 깊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기도 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도 서로를 위해 그리고 ‘나’의 성장을 위해 고쳐야 할 부분은 고쳐나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요한 ‘서로서로 맞춰나가기.’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 과정은 연애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조금씩 시도해봤다. 문제는 작심삼일, 흐지부지의 연속이었다.


그럼, 왜 연애할 때만 가능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상컨대,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바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작심삼일의 연속은 그만두어야 한다.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마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래서 이런 부분이 미처 성장하지 못한 나의 내면이란 것도 알았다.

사춘기 소녀에서 멈춰 있는 부분을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내가 나를 도와야 한다.

    

이것이 달라진 시선으로 과거를 마주하고 나서의 세 번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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