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칸트와 황희정승

인식

by 결휘

인식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어떤 기억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안경을 처음 끼던 그날. 언제부터 시력이 나빠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멀리 보는 것이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덩치가 컸던 터라 맨 뒷자리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칠판의 글씨가 잘 안보였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입학식을 마치고 바로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시력 검사를 하고,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얼마쯤 기다렸을까 , 드디어 안경점 주인아저씨가 직접 안경을 씌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잘 보이는지, 어지럽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친절했던 사장님은 ‘가게 밖으로 나가 시험 삼아 주변을 둘러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쨍쨍한 햇빛 아래,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가게 간판들—모든 것이 또렷하고 선명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심청전 속 심봉사가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심봉사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날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특별한 날이었건만, 다른 기억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유독 안경을 처음 썼던 그 순간의 경험만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렌즈를 통해 보다 깨끗하고 선명한 세상을 보게 된 경험은 분명 신기하고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어떤 렌즈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안렌즈를 사용하면 물고기처럼 180도의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적외선 렌즈를 사용하면 칠흑 같은 밤에도 인간의 형체를 푸르고 붉은빛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는 붉은색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투우사가 흔드는 붉은 망토도 사실 투우를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중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지요. 소 입장에서는 흔들어대니 화가나는 것입니다.

증발하는 액체는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물의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반면 낙타는 물의 냄새를 감지하고 사막 한가운데서도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렇다면 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더 나은 것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그것이 필요 없는 인간의 감각이 더 효율적인 것일까요? 어쩌면 낫고 못하고를 물을 수 없는 그저 “다름”의 영역이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 인식은 특정한 ‘종(種)의 경험’ 일뿐이며,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인의 경험’에 불과합니다. 철학자 칸트는 이러한 대상과 인식의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을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물자체(thing in itself)는 알 수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중개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을 통해 재구성된 세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물'뿐만 아니라 ‘사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물자체’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듯이,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종 시대 황희 정승의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다툼이 났습니다. 한쪽이 힘이 부족했는지 억울한 마음이 컸는지, 정승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판단을 요청했습니다. 황희 정승은 그의 말을 다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종이 찾아와 자신이 억울하다며 다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황희 정승은 그의 말도 모두 들은 뒤,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승의 아내가 답답한 듯 말했습니다.

“대감, 판단이 흐릿하십니다.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어보셨으니 이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옳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틀렸다고 판단을 해주셔야지, “네 말이 옳다”라고만 하시니 답답합니다”그러자 정승이 답을 했습니다. “부인, 부인의 말도 맞소.”

이 이야기는 후대에 내려오면서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집니다. 어떤 기록에서는 황희 정승의 아내가 아니라 조카가 이 말을 했다고도 합니다.


칸트보다 약 백 년을 앞서서 살았던 황희 정승은 이미 “사건 자체는 알 수 없다”라는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 깨닫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다그치고 아무리 엄밀하게 살펴보아도 지나간 사건을 재 구성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어느 하나가 거짓이 아니고, 사태에 대한 다른 두 주장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본 것, 들은 것조차 언제든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사건은 하나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 이야기가 실제로 황희 정승집안에서 있었던 사건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승의 삶이 이룬 업적이 크다 보니, 그의 삶에 대해 그만큼 훗날 덧붙여진 상상의 민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란, 인간에게는 어렵습니다. 본 것, 내가 직접 듣고 경험한 것조차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성숙하고 건강한 삶의 지혜인 것은 분명합니다.

황희정승은 90세, 칸트는 80세를 살았습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한 삶입니다. 그것도 매우 건강하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