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2. 이야기
어떤 하늘은 특별하다. 수 없이 많은 날들을 땅만 보며 살다가 문득 마주치는 밤하늘. 형형한 달빛 쏟아질 듯 다가오는 수많은 별들. 늘 그 하늘 아래 있어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간은 거룩해진다. 하늘의 어떤 흔적도 인간의 세상보다 작지 않다. 손을 내밀어 움켜쥐려 해 보지만 닿을 수 없는 그 빛. 어떤 밤은 낮보다 더 밝을 수 있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먼 훗날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도착하기도 전에 동양의 어떤 이가 토끼 한 쌍을 그 달에 풀어놓았다. 떡방아를 찧던 토끼들이 어찌 됐는지 그 후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아폴로 우주선이 그곳에 토끼가 없다는 것을 알려왔지만, 어떤 이들은 아직도 둥근달이 뜨면 달토끼가 보인다고 한다. 어찌 됐던! 어쩌면 달에 최초로 도착한 것은 암스트롱이 아니라 토끼를 풀어놓았던 그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지식에 있어 현실과 상상, 상상과 현실은 서로를 넘나 든다. 인간의 경험은 초라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한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한 번도 같은 하늘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늘 새로운 하늘이다. 그러나 그 하늘 아래가 낯설지 않은 것은 하늘은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고대 그리스 인들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먹이던 헤라 여신의 젖이 뿌려진 것으로 지식 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은하수를 헤어져있던 견우와 직녀에게 일 년에 단 한번 건널 수 있는 강으로 지식 했다. 어쩌면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허구요 흥미거리 이야기이지만, 오랜 기간 인간은 이야기로 정보를 보존했고 후세에 전해졌다. 이야기는 수 천 수 만 년 동안 유효했던 지식의 방식이었다.
어느덧 인간 유전자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본성이 새겨졌다. 그것이 어린아이들이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이며, 성인들이 아침 드라마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번개를 제우스의 무기로 믿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면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군가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소리치면 함께 낄낄거리는 여유도 있었으리라. 그리스 인들이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를 즐겼던 것은 현대인이 아침드라마에 빠져드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인류는 자신을 미지의 어두움에 방치하지 않았다. 비록 체험되는 정보는 적었지만 그것들을 모아 가공을 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진실에 다가갔다. 호모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생각했고 이야기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주었다. 저들의 삶은 고달팠지만, 이야기가 있어서 풍성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