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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시장에 나오다

새로운 사유

by 결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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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시장에 나오다

기원전 6세기 무렵은 인류의 사유가 한 단계 도약한 시기였습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철학이 태동하였고,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기원전 624년), 중국에서는 공자(기원전 551년)가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지식 체계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지식의 역사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했습니다. 그 무대는 바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그리스 자연철학자라 부릅니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르케(Arche)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르케란 그리스어로‘처음, 시초, 원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들이 특별한 이유는 세상의 근원을 신에게서 찾지 않고, 자연 속에서 답을 구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 지식은 신화와 결합되어 있었으며, 모든 것의 근원이 신이라면 아르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자연철학자들은 지중해 동쪽, 현재의 터키 지역인 소아시아 이오니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초의 철학자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탈레스(기원전 625~624년)’입니다. 탈레스는 “우주는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물이 생명의 근원이자,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만물의 기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은 그 모양이나 규모에 제한 없이 어느 곳에도 깃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이에 반대했습니다. 만약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면 불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물과 불은 공존할 수 없기에, 물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르케를 ‘아페이론(Apeiron)’, 즉 ‘무한한 것’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물이나 불 같은 특정한 물질이 아니라, 어떤 한정된 성질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존재였습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화적 사고와 구별됩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 역시 스승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페이론이 너무 막연하고 신비주의적인 주장이라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르케를 ‘공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공기는 압축되거나 팽창하면서 다양한 물질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만물의 기원으로서 적합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철학자들이 저마다의 주장을 펼쳤고, 후대로 갈수록 더욱 많은 이론이 등장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며 “불”을 근원의 존재로 보았고, 피타고라스는 “수(數)”가 만물의 기본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철학이 발전하면서, 결국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러 우리가 익숙한 개념인 “원자(아톰, Atom)”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의 존재를 원자로 규정하였고, 심지어 영혼조차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현대 물리학의 개념에서 보면 ‘분자’에 더 가깝습니다. 이후 그의 사상은 무신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빈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어떤 자연의 어떤 재료로 설명했는가가 아니라, 물음과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각의 방법과 영역이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작업은 신화적 지식과 학문적 지식을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인간 사고가 형이상학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활동은 지식을 시장에 내놓는 첫 시도와 같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논쟁과 검토를 통해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지식을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시장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지식이 단순히 권력자나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탐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자연철학자들이 아르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모든 철학자들이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다 보니, 도대체 어떤 것이 진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너무 많은 이론이 난립하면서 ‘과연 절대적인 자연의 진리란 존재하는가?’라는 회의가 싹트게 되었습니다. 점차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상대방을 논박하고,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는 변론술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Sophists)였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자연철학자들 이후의 지식 시장에 나타난 새로운 참여자들로, 지식의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자연철학자들처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기보다는 인간의 삶과 사회를 중심으로 지식을 논의했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 지식을 가르쳤으며, 논리와 설득을 통해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중시했습니다.


소피스트들의 등장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공공연설과 토론이 정치와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말과 논리의 기술이 중요해졌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수사학과 논리학을 가르치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들은 지식의 대중화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진리와 상대주의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소피스트들은 논리적 변론술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논(Zeno)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예로 들어 유명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아킬레스가 아무리 빨라도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논리는 이러합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에 다가가려면 먼저 거북이가 있던 지점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거북이는 조금 더 앞으로 가 있겠지요? 이 논리를 무한 반복하면, 결국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한 제논에 의하면 인간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을 추월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화살은 결코 목표물에 닿을 수 없다고 논증합니다. 현대 수학에서는 이를 극한 개념으로 해결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논증이었습니다.

물론 제논의 논증은 논란을 위한 궤변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며 세계의 변화에 주목했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위한 주장이었고, 변치 않는 실체, 진리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자 사용했던 논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킬레스가 아닌 누구라도 한달음에 거북이를 추월할 수 있고, 날아오는 화살에 맞으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피스트들의 논쟁술, 변론술이 당시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맞아 복잡해진 그리스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소피스트들은 변론술을 이용해 법정과 정치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 ‘소피스트’라는 단어는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했으나, 점점 ‘궤변론자’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보다는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의와 진리는 점점 힘과 이익 앞에서 무력해졌고, 결국 그리스 사회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원전 6세기부터 시작된 철학은 지식 탐구에서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논쟁과 변론의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철학이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권력과 논쟁의 수단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금 ‘진정한 진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탄생을 예고하게 됩니다. 진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는 슬기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곧 지식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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