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피데(신뢰의 인간, Homo Fide)
서문
서문: 지식의 시대, 혼란의 시대
지금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의 우세종이지요. 이 매력적인 무대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아왔고 또 사라져 갔습니다. 고생대의 맑은 바다를 헤엄치던 암모나이트와 중생대를 지배했던 티라노사우르스의 무리들, 그리고 지금 신생대의 주인공은 단연 인류라 불리는 우리들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생명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종입니다. 북극의 얼음 대륙에서 남극의 극한 추위까지, 심해의 깊은 곳부터 하늘을 넘어 우주의 끝까지, 그리고 빅뱅과 우주의 종말을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주어진 자연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약의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성공은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날개, 날카로운 이, 힘센 근육을 갖지는 못했지만, 인류는 탁월한 뇌를 장착하고 지혜를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우리 인간종의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다루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술, 종교,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로써 인류는 끊임없이 환경을 개척하고, 서로 협력하며, 역사를 창조해 가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날 인간의 슬기는 무한한 신뢰와 존중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슬기의 지위에 대한 첫 도전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핵무기의 등장은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어놓았습니다. 기술적 발전이 더 이상 순수한 축복이 아니며, 오히려 어쩌면 절망적인 파국으로 이끄는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거대 담론들에 대한 회의와 해체의 시도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와 민족 이념과 정의와 같은 거대 담론들이 해체되고 개인과 다양성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새로운 시대 개인의 의미는 높아져갔고, 자유와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와 지혜를 모으며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개인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탐색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더욱이, 정보화 시대를 열어준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들은 한층 더 풍부한 소통과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체와 재구성의 물결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재정립할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불안정성과 혼란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현대인들의 삶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소통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나, 그만큼 타인의 의도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에만 몰두하거나, 의견이 다른 이들과의 갈등에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 없이, 개인적 입장만을 강화하는 ‘필터 버블’ 현상이 가속되면서 공동체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치 사회 문화의 뿌리는 시대의 지혜에 닿아있습니다. 드러난 문제들 나타나는 현상은 그 뿌리에서 온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의 진리와 개인의 망상이 “내 생각” “나의 판단”이라는 말로 구별되지 못하고 혼란을 줍니다. 지금 슬기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글은 "지식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와 형태, 맥락 속에서 변화하고 작용하는 역동적인 존재입니다. 이 책을 통해 목적하는 바는 지식의 다양한 모습을 조망하며, 그 본질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인간 지식의 근본 최소 단위는 "약속"이라는 통찰을 가지고, 슬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이 여정을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