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의 우물과 뉴턴의 사과
어렸을 때 읽었던 이솝우화 가운데 나오는 한 천문학자의 이야기입니다.
한 천문학자가 매일매일 저녁마다 별들을 관찰하러 밖으로 나갔다. 어느 날 밤, 그는 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열심히 하늘을 쳐다보면서 돌아다니다가 우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댔다. 마침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천문학자가 왜 우물에 빠졌는지 이유를 알게 되자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이보시오, 우물 속에 빠진 양반.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에 열중하다가 자기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당신도 참 한심하구려."
동화에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래에는 우물에 빠져서 망연자실한 나이 든 천문학자의 모습이, 또 위에는 지나가던 사람이,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지 않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이 우습다는 듯이 폭소하는 그림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지요. 그리고 한 줄 교훈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너무 이상만 바라보지 말고 현실도 살펴야 한다”어쩌면 우스꽝스러운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비밀을 담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인지를 깨달은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일차적으로 이 이야기는 그저 정신없는 노 천문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 어떤 수사도 부족한, 탈레스의 일화입니다. 탈레스가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다가 우물에 빠진 사건은 당시 그리스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건은 이솝 이후, 플라톤 저서 <테아테토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사형선고를 받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탈레스의 처지에 투사하면서 인용합니다. 지나가던 행인은 사실은 탈레스 집안의 하녀였습니다. 여인은 트라키아 출신이었습니다. 플라톤은 탈레스를 우스꽝스럽게 기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오히려 우물에 빠진 그를 조롱하는 세상의 시각이었던 것이지요.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저서 <형이상학>에서 탈레스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에게 ‘철학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선사합니다. “너무 이상만 좇지 말고 눈앞에 현실도 바라보아야 한다”라는 우화의 교훈은 뭔가 어긋난 교훈이었던 것이지요. 이솝의 원본에는 이야기만 나올 뿐, 동화책에 나오는 교훈들은 후대 편집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탈레스의 위대함은 그가 서양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근원이 되는 물음을 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아르케, arche)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인간의 지성의 새로운 지평을 넓힌, 선구자의 물음이었습니다.
탈레스 이전 인간은 신화의 세계를 살았습니다. 우주의 변화, 우주의 기원, 그 모든 물음이 신의 이야기로 답해졌습니다. 하늘의 변화는 제우스를 통해서, 바다의 폭풍과 해일은 포세이돈의 이야기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는 페르세포네와 데메테르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신화의 세계관에서는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었는가?’를 묻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물음의 답은 ‘신’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탈레스의 탁월함은 그가 신화의 세계관이 아니라, 자연 가운데 그 답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 인간의 슬기와 명백하게 구별이 됩니다.
그는 자연 속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없는 “물”을 만물의 시초이자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최초로 자연현상을 신화가 아닌 합리적 방법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게 철학의 아버지라고,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선사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놀라운 지혜의 소유자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은 여러 가지로 전해집니다. 그는 닮은 꼴 삼각형의 원리를 이용해 이집트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아냈습니다. 실제로 천문학에도 능통해 기원전 585년에 있었던 일식을 정확히 예측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기후의 변화를 통해 올리브 농사의 풍년을 예측하고 크게 수익을 얻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솝이 담고 싶었던 것은 우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물에 빠진 탈레스가 만물의 기원을 물이라고 주장한 것이 공교롭습니다. 어쩌면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듯, 탈레스가 만물의 기원을 물로 본 것도 우물에 빠진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그냥 헛헛한 제 생각일 뿐입니다.
“너무 이상만 바라보지 말고 현실도 살펴야 한다”는 교훈은 유익하지만, 어쩌면 탈레스에게는 전혀 억울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찾으려 한 최초의 철학자였기 때문입니다. 뉴턴의 사과보다 인류역사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탈레스가 빠졌던 그 우물이 아닐까요?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발밑을 놓친 사람이 아니라, 발밑의 물에서 만물의 기원을 발견한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