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권위: 거인의 어깨 위에 서다

by 결휘


동양 문화 전통에 있어서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은 ‘엄친자모(嚴親慈母)’입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엄격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친구 같은 아버지, 친구 같은 선생님, 수평적인 리더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곤 합니다.

‘권위(權威)’라는 말은 오늘날 강압, 억압, 낡은 질서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본래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된 결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권위의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라는 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유익합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권위의 본질이 힘이나 억압이 아닌 ‘성장’과 ‘신뢰’에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양의 ‘권위(權威)’라는 한자어에 사용된 권‘(權)’은 본래 '저울추'를 의미하는 글자였습니다. 저울추는 사물의 무게를 정확히 재어 그 가치를 판단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권력(power)’, ‘권리(right)’라는 뜻도 갖게 되었지만, 그 근본에는 '사물의 경중과 시비를 분별하는 올바른 기준과 판단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위(威)’는 ‘위엄(dignity)’이나 ‘위세(influence)’를 뜻하는 글자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기운을 말합니다. 따라서 동양에서의 ‘권위’란, 올바른 판단력(權)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존경하고 따르게 만드는 내적인 위엄(威)을 의미합니다.


영어에서 ‘권위(authority)’라는 말은 라틴어 ‘아우토리타스(auctorita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은 ‘창조하다’, ‘증가시키다’, '성장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아우게레(augere)’ 및 명사 ‘아우토르(auctor, 창조자/설립자/보증인)’와 관련이 깊습니다. 즉, 권위의 본래 의미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고, 성장시키며, 풍요롭게 만드는 영향력 있는 힘을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억누르거나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도 법적인 강제력을 가진 '힘(potestas, 권력)'과 구분하여,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자발적인 동의와 복종을 이끌어내는 정당한 영향력을 ‘아우토리타스(auctoritas, 권위)’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서양에서 권위란 본래 무언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키워내는 창조적인 힘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위의 본질은 강압적인 힘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힘’과 ‘올바른 판단력에 대한 신뢰’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본래 의미를 되새겨볼 때,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위계질서가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고 이끌어주던 건강한 ‘신뢰 관계’가 본질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장에서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정치사회적 맥락의 권위가 아닙니다. ‘지식의 방법으로서 권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슬기인간(호모 사피엔스)은 모든 경쟁자를 이기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경쟁자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마지막 경쟁자는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체격이 더 강건하고 두뇌 용량도 컸으며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성장 속도’ 가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현생 인류의 어린이는 뇌 발달을 포함하여 성인이 되는 데 18~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그보다 훨씬 빠른 14~16세면 성인이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4~6년의 차이는 생존 경쟁에서 불리해 보이지만, 오히려 오랜 성장 기간은 인류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학습과 정교한 지식 전승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 스승, 부족의 어른들 같은 선험자들의 권위는 위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가르치는 안전한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는 뱀에 직접 물려보지 않고도 두려움을 배우고, 불에 데이지 않아도 그 위험성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 즉 ‘권위를 통한 학습’이야말로 인류의 특별한 슬기이자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권위는 가장 효율적이고 오래된 지식 전승의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 권위는 예전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사회 전반에서 “권위 있다”라는 표현이 긍정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들릴 정도로, 권위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첫째, 사회의 민주화와 평등 의식의 확대입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처럼 신분이나 지위로 남을 지배하거나 복종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둘째, 정보화 시대의 도래입니다. 이제는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전문가나 교사 같은 권위 있는 인물들이 알려주는 지식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제는 학생도 어린아이도 스마트폰으로 모르는 것을 바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권위자의 지식 독점이 무너진 것이지요.

셋째, 과거 권위 남용에 대한 반성도 한몫했습니다. 일부 권위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여 부당한 행동을 한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권위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도전과 변화는 우리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는 기성세대의 낡은 권위를 거부하는 학생운동과 반(反)문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전통적인 가족 관계 및 사회 권위 구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권위가 급격히 사라진 자리에 대안적인 질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서 새로운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20세기 독일 출신의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권위의 상실을 단순한 세태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보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전체주의를 직접 경험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그녀는 권력, 폭력, 그리고 권위의 본질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아렌트가 강조한 진정한 권위는 물리적 강제나 논리적 논증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발적인 존중과 인정이라는 ‘공통의 세계’를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권위는 사회에 안정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튼튼한 다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전통적 권위를 잃은 사회가 결국 객관적인 사실이나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각자의 감정과 주관적인 믿음만이 유일한 진실처럼 통용되는 시대, 즉 '탈진실(Post-truth)'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전통적인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는 실제로 새로운 혼란이 생겨났습니다. 아렌트의 경고처럼, 권위를 잃은 사회는 점점 각자의 주관적인 믿음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파편화된 길을 걷게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전문가의 합리적인 지침보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 온라인에서 더 빨리 퍼지는 현실은, 우리가 함께 서 있던 신뢰의 토대가 얼마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동체를 묶어주던 공통의 가치와 언어가 약해지면서 세대 갈등, 가족 해체, 개인의 고립, 심지어 은둔형 외톨이 같은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습니다.


위대한 지성 뉴턴은 자신의 업적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선 세대가 쌓아 올린 지혜와 성취, 즉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먼 도약이 가능해지는 법입니다. 지식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전문가의 건강한 권위는 꼭 필요합니다.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과 기술은 개개인이 모두 처음부터 직접 검증하고 익힐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 일생을 바쳐 쌓은 전문 지식을 다음 세대가 일단 권위로 인정하고 학습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이루어 온 것입니다.


권위의 방법을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세 가지 요소(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에토스(Ethos)’, 즉 화자의 됨됨이와 그에 대한 신뢰도를 꼽았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받아들여지는 의미와 무게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권위의 외형이 무너진 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람이 가진 직책이나 직함 같은 겉모습만으로 쉽게 믿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 사람의 과거 발언과 행동의 일관성, 전문성, 정직성,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과 같은 ‘신뢰의 조건’을 꼼꼼히 따져 그 사람의 말을 판단합니다.


결국 권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라질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샘의 원천이 옮겨간 것뿐입니다. 과거의 권위가 ‘지위’에서 나왔다면, 새로운 시대의 권위는 오직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을 때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다른 의견을 경청하는 열린 자세, 그리고 자신의 말이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신뢰할 수 있는 태도’를 꾸준히 쌓아갈 때만, 비로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나침반으로 삼아 기꺼이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신뢰에 기반한 건강한 권위가 우리를 더 나은 시대로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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