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제도는 단순한 법적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법은 기준과 한도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으나, 기업회생 제도는 다르다. 이 제도는 청산가치와 계속기업가치를 비교해 회생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채무를 감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법률적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기업회생 제도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시장에서는 종종 위의 그림과 같이 파산과 회생을 서로 독립적인 선택지로 생각한다. 채권금액 100을 20 또는 30으로 선택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기업회생 제도를 채권자에게 손실을 강요하며 채무자를 돕는 절차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는 기업회생 제도가 가진 경제학적 본질을 간과한 시각이다.
회생은 위의 그림과 같이 청산가치에서 계속기업가치로 나아가는 의사결정이다. 이미 채권자의 부 100은 20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즉, 100은 매몰비용이다. 회생은 그다음 단계로 기업의 총체적 가치를 판단하여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매몰비용의 개념은 기업회생 제도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매몰비용은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향후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아야 할 요소다. 예를 들어, 100억 원의 채무를 진 건설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고 하자. 이 회사의 자산을 전부 매각하면 20억 원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진행 중인 공사들을 완료하고 향후 사업을 계속하면 30억 원을 회수할 수 있다. 이때 채권자들은 과거의 100억 원이 아닌, 현재 선택 가능한 20억 원과 30억 원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경제학적 개념인 매몰비용이 법의 틀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의 기업회생 제도는 약 200년에 걸쳐 발전했다. 1800년에는 상인(traders)에게만 적용되는 파산법이 도입되었으며, 자발적 파산(voluntary bankruptcy)이 아닌 강제적 파산(involuntary bankruptcy)만 허용되었다. 이 법은 채권자들이 채무자를 과도하게 파산 절차로 몰아넣는 문제로 인해 1803년에 폐지되었다. 1841년 파산법은 1837년과 1839년 금융 공황(Panic of 1837, 1839) 이후 제정되었으며, 자발적 파산을 허용한 최초의 법이었다. 그러나 높은 비용과 부패 문제로 인해 1843년에 폐지되었다. 1867년에는 남북전쟁 이후 경제적 필요성과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새로운 파산법이 도입되었고, 상인, 비상인, 회사까지 포함하도록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 법은 채권자와 채무자 간 합의를 허용하는 조항(compositions)을 포함했으나, 결국 1878년에 폐지되었다. 현대적인 기업회생 제도의 기초는 1898년 Bankruptcy Act에 비로소 마련되었다. 이 법은 기업이 채권자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개념을 도입하며 현대적 채무-채권 관계의 기초를 제공했다. 이후 1938년 Chandler Act는 자발적 파산(voluntary bankruptcy)을 확대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현대적 틀을 마련하며 기업회생 제도의 발전을 이끌었다. 1978년 Bankruptcy Reform Act가 도입되면서 Chapter 11(기업 회생), Chapter 7(청산), Chapter 13(개인 회생) 등 현대적 구조가 확립되었으며, 이후 1994년과 2005년 개정을 통해 기업가치 보존과 이해관계자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경제학적 관점이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1962년 구 화의법을 시작으로 기업회생 제도를 도입했다. 초기 법률은 일본의 회사 갱생법을 통해 미국법을 간접적으로 계수한 결과로, 한국적 경제 상황에 맞춰 적용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기업회생 제도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인해 기존 제도의 한계가 드러났으며, 이는 IMF 구제금융 조건 하에 2006년 통합도산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통합도산법은 기존 회사정리법과 화의법을 통합하여 회생 절차를 단순화하고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기업과 금융기관 간의 밀접한 관계,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등 한국적 맥락을 반영했다.
미국과 한국의 기업회생 제도는 각각의 경제적, 법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발전해 왔다. 미국은 기업가치 보존과 이해관계자 간 합리적 조정을 중시하며 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한국은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적 위기 속에서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
결론적으로, 기업회생 제도는 법률과 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이 제도는 단순한 채무조정이 아닌, 기업가치의 극대화와 이해관계자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회생을 넘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기업회생 제도는 현대 경제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았으며, 앞으로도 그 중요성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