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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Nov 28. 2023

이상이 도피처가 되지 않도록

긴 시간을 돌아 다시 현실에 서다.

귀여운 여자와 섹시한 여자가 나왔다.

그리고 그 여자들을 죽이려는 인격이 있었다.

죽이려는 여자들은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았다.


이어서 꾼 꿈에는 하늘색 벌레가 나왔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벌레를 죽이고 싶었으나,

벌레는 소름 돋도록 죽지 않았다.


잠에서 깬 은영은

아직 선명히 남은 꿈에 대해 생각했다.


변신을 거듭하며 아무리 애써도 죽지 않던 여자,

식탁에 앉았다 벽에 붙었다 그녀를 괴롭히던 하늘색 벌레는

은영이 그토록 없애고 싶던 그녀의 에고(ego)였다.


감싸주고 사랑해 줄걸...

왜 그렇게 죽이려고만 했을까...


그러고 보면 '작은 나(ego)'는 결코 죽지 않았다.


명상할 땐 온 세상이 연결되어 사랑이 가득했지만, 돌아서면 별 것 아닌 일로도 여린 아이를 혼내는 내가 있었다.


제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하여 '미운 사람은 내 안의 그림자' 임을 납득했어도, 상황이 벌어지면 또다시 불쑥 올라오는'화'에 당황하곤 했다.


01.

긴장 가득한 삶이었다.


높은 이상에 맞춰

높은 규정을 세웠다.


시간 관리, 미라클 모닝, 목표 세우는 법,

다이어리 쓰는 법도 며칠씩 찾아봤다.


잘 살다가도 번번이


다시 또 불안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앉았다 일어났다

나갔다 들어왔다


이렇게 한심한 자신을 원망하고, SNS로 영화로 잠시 잊고 피했다가, 동기부여 영상에 눈물 흘리며 열을 올렸다가, 다시 또 돌아와 막막함에 하루를 망치는 날이 많았다.


어쨌든 꾸역꾸역 성장은 했다.

성장은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은영이 작은 자아를 그토록 싫어한 이유는 거짓 욕망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괴로운 날들 때문이었다.



02.

탈출구가 등장했다.

내면의 세계였다.


사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큰 존재란 사실이 은영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음공부는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으며 행복은 여기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평행우주, 양자역학,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던가, 현실은 환상이라던가... 세상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밤을 새워 들어도 재미있었다. 게다가 상상과 느낌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쉽고 매력적인가?!


한때는 듣기 좋은 소리라 치부하던 '감사하라.' '사랑하라.'는 말들이 가슴에 닿기 시작했다. 오글거리던 '치유'와 '힐링'이란 단어가 구겨진 마음을 펴는 따스함으로 다가왔다.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힐링을 이해 못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생겼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어느 날 은영은 이어폰을 꽂고 산속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을 뻔했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에 푹 빠져 걷다 보니 낯선 길이 펼쳐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돌아가면 나오겠지'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처음 보는 풍경에 서서히 공포가 몰려왔다. 그때부터는 이어폰을 빼고 사색이고 기도고 뭐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 쏙 빠지는 경험을 한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죽지 않는 여자와 하늘색 벌레 꿈이었다.


03.

미래만을 보며 채찍질을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녀는 현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럴듯한 이론과 멋진 이상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일 뿐,


좋은 책과 현자가 말하는

인생의 원리와 성공의 원리는

설사 그것이 진실이라도


깨닫고 이해한 것과

실제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경험을 통해 확실해지는 것은

아주 쉬워 보이는 이론이라도

삶에 녹아들기까지는

반복하고 우려내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무의식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며,

한 번에 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깊이 빠지는 건 위험하다.


은영은 '이거다!' 확신하며

나를 지켜준다 믿었던 신념들이

말랑말랑 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닐 수도 있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확고하던 생각도 변할 것이다.'


믿음이 달라진다는 건

그의 세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껏 변화는 늘

더 나은 쪽으로 흘러왔다.




모든 순간 모든 경험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다시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감정에 허우적거리던 날들 덕분에 이제 은영은 자유로움이 무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원수라 여겼던 작은 나를 안아주었다. 에고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욕망을 실현시켜 줄 나의 개성이며 정체성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 서서히 사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딪히며 배우라고, 반대쪽을 받아들이며 동그랗게 확장해 보라고, 삶은 그렇게 기회를 주며 늘 보살피고 있었다.


열심히 자기 계발서를 읽고

열심히 영성 공부를 한 후에

무엇이 남았을까?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 이제는 그렇게 거창한 목적까지 가지 않더라도 은영은 눈앞의 작은 성취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녀 안에는 사랑과 수용이 자라나 있었다.

영성은 늘 닮아가고픈 기준과 중심이 되었다.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졌다.

그냥 그것이 성공이었다.


에고의 욕망과

진정한 욕망을 본 후에

성공에 대한 느낌,

그것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은영은 이제 알 수 있었다.


비전은 하루 종일 고민한다고 뚝딱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잘 산 하루하루가 모여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일이면 허무해질 비전을 세우고 계획을 짜기보다

목표가 없더라도 당장 지금부터 한 걸음.


이제는 막연한 꿈과 이상으로 도망치지 않겠다고,

사색과 이론에만 빠져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이 모든 것이 결국

현실을 잘 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믿을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움직임이다.

이 순간에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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