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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Jan 19. 2024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려는 예술가들에게

다름의 아름다움, 창조 그리고 신

당신과 나는 달라서 서로를 드러나게 하네요.

다름을 겁내지 않을게요.

당신 덕분에 내가 드러나고

내 덕분에 당신이 드러나요.

그러니 표현할게요.


당신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

모두에게 납득시키려 하기보다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


* 이 글은 '다름은 분리가 아니라 드러남이며 다름의 본질은 표현'이라는 나말록 작가님의 글에서

용기를 얻어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려고 애써왔을까!


가볍게 센스 있게 에둘러 표현하려다가도

어떤 날은 투박하게 그대로 신(神)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다시 여기에 올라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신이시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다른 이가 언급한 신 말고,

내가 경험하는 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숨결보다 가까운

나의 신은 어떤 모습인가?


그러다가 문득


마흔 즈음에 다가온 이 물음이

스무 살 이후 내내 해왔던 질문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신은 누구인가?"


성인이 된 후로,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에고를 전부로 알았던 시간을 지나 에고를 품은 '큰 나'로, 욕망과 허무, 미움과 용서를 지나 의식의 확장으로...


자아실현, 자기실현, 자기완성... 어떻게 표현하든

'작은 나'는 그토록 '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나에 대한 궁금증이 곧 신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저기 멀리 아빠가 앉아계실 것만 같은 벤치를 향해 벅찬 걸음을 걷는다.


가까이 가니 두 개의 벤치가 나란히 기다리고 있다.



가슴을 따르는 일은 분명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의 길이었다.


감사하게도

이끌리는 좁은 길을 계속해서 걸은 덕분에

여기까지 흘러...

하루에도 몇 번씩 아! 하는 순간을 만난다.


수많은 인연이 얽혀 만든 한 순간의 사건, 지금 여기에 숨은 영원성. 그러나 나는 이것을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결국에는 신(우주의식)이라는 말밖에. 그러나 이마저도 괜한 오해만 낳을 뿐이란 생각에 또다시 말을 멈추고...


어렵다.

유별나보이는 싫다며 머리가 계산을 한다.

현실적인 누군가는 참 쓸데없다고 생각하겠지?

자아성찰은 이쯤이면 된 거 아니냐고.

상대의 마음과 상대의 용어로 표현하겠다고

그 다짐도 대체 몇 번이나 했는데


여전히 닿지 못해 상대가 되는 법을 모르는 나는

다시 또 돌아와 이런 글을 찾고 읽고 쓰고 있다.


아니, 이전보다 더욱 생각한다.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묻는다.

어느덧 이것이 나에겐 명상이 되고

이제는 삶 자체가 명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고집을 부리던 이성이 포기를 선언했다.

작은 자아가 더 이상은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알 수 없고, 모르겠고

그러니 알아서 하시라는 내맡김 속에

고요한 신비가 스며들었다.


함이 없이 하는 삶.

애씀 없이 자기실현.

계속해서 찾고 있던 잠재된 나,

본래의 나의 실현.


설익어서 당신의 용어가 되지 못한 열매를

안 쓰는 게 낫겠다면서도

굳이 나는 왜 표현하려는 걸까?


의식의 펼쳐짐


그것 때문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와 자기 자신을 펼치려는 의식을

계산하고 판단하는 내가 멈추게 할 수 없다.


완전한 항복.


실체 없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어차피 이루어질 일들에

저항하며 괴로워하지 않기로 한다.



글을 발행하기 우연히 초코아님의 을 읽었다.


남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타인의 시선에서는 색다름일지라도

그것이 개인적 관점에서는 자신의 색을 찾는 것이라는 격려.


그래, 나는 계속해서 나의 색을 찾고 있을 뿐이다.


필요한 순간 찾아온 글이 연결을 느끼게 하고,

다시 나는 신께 감사를 드린다.


신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장님이 만진 코끼리의 부분 부분일 뿐.

상상 못할, 표현 못할 그저 각자가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신비, 무한한 사랑


삶은 은총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나의 시선으로

내가 느낀 삶을 표현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하려고 애써왔을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죽음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은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 있어야 하는 것으로,
살아서 자신의 참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 네 가지 약속(천 년간 전해온 톨텍 인디언의 위대한 가르침) 中




<표현의 용기가 되어 준/ 나말록님, 초코아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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