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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Dec 18. 2023

너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면...

웅크린 너에게

어떻게 해야 하죠?



소리 없이 죽어가는 소녀들을 위해 기도했다.


감당하기 힘든 정보, 부풀린 과시, 가혹한 기준.

비교와 경쟁 속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과 친구들.


애쓰다가 무너져버린

작고 여린 둑.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릴없이 글을 쓴다.


진실한 마음을 따르면 나는,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선다. 


그 길을 걷고 그 길에 집을 짓고

꽃을 심고, 빵을 굽고, 따뜻한 차를 준비해야지.


손재주도 없고

꾸미지도 못하고

거창하거나 숭고하지도 못하지만,


네가 오면 귀를 열고

너의 이야기를 들을게.


말하기 싫다면 기다릴게.

그래도 싫다면 그냥 듣기만 해도 좋고

꽃과 나무만 바라보다 가도 좋고

빵 향기만 맡거나

차만 마시다 가도 좋아.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고

그냥 시크하게 불만만 말해도 좋아.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 드러날 네 안의 빛!


실체 없는 어둠을 흩어지게 할

너의 빛을 건져내는데

아주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닿지 못해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게.


내가 이 길에 살고 있으면,

진실한 마음을 좇아 이곳으로 온 너를 만날 수 있겠지. 


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노크도 하기 전에 문을 열게.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더라도

네 안의 진실을 따라가.


고통스러우면서 편안한 그 어둠에 숨지 말고

그러나 극복하려고도 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리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에 가만히,

웅크린 몸을 펴 한 걸음을 걸어 봐.


그곳에는 먼저 간 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 문들을 통과하여 가장 바라던 너를 만나.


그 우울한 감정은 네가 아니야.

그 어두운 생각은 네가 아니야.

그 감정과 생각 너머에

진짜 너는 

밝은 빛이고 사랑이야.


내가 그렇게 도움 받았던 것처럼,

너에게 나도 누군가가 되어 문을 열게. 


진실한 너의 가슴을 따라가면

언젠가가 아니라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신림역 근처 자취집에서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커다란 고시학원이 있었다. 1층엔 대형 마트가 있었고 마트 왼쪽으로 사랑방 같은 곳이 있었다. 딱 두 번 그곳을 갔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불합격을 피하는 법] 저자 강연이 있던 날, 다른 한 번은 학원 친구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바구니에는 차와 간식이 담겨 있었고, 책이 몇 권 꽂혀 있었다. 어느 마음 좋은 분이 고생하는 고시생들을 위해 만든 장소라고 했다. 별 관심은 없었다. 그냥 회색과 겨울로만 기억되는 신림동에서 그 공간만큼은 노란빛이 도는 따뜻한 장소로 남았다.


겨울을 겪고 봄을 맞아 다시 그 빛을 나누어 준 당신과

저마다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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